내게는 일상보다 더 일상 같은 여행이었다.
라면을 너무 좋아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면 음식은 모두 다 사랑했다. 두 번째로 긴 여행을 시작했을 때, 혹시 몰라 트렁크 한편에 우리나라 라면을 챙겨 넣은 것은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미고렝이라는 현지 음식도 면이긴 했으나 처음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입맛에 썩 맞지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만은 하지 말자고 늘 생각했지만, 인간이기에 선택 그 뒤에는 늘 후회가 따라왔다. 힘든 여행이었다. 아무리 휴식을 위해 떠난 여행이라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태반이었다. 일을 하지 않는 기간이 아니라면 항상 바쁘게 이것저것 시도하는 나였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어색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자는 것이 삶의 목표였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었다.
꼭 여행의 중반쯤이었다. 익숙해진 숙소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숙소 주변이 마침 지루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조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지 싶은 마음에 덜컥 윗동네에 숙소를 찾아서 결제했다. 최소의 금액으로 최대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고민했던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결제는 빠르고 쉬웠다.
내가 나를 이토록 모르고 살았나.
고새 습관처럼 묻어난 생활 패턴과 방식 때문에 나는 그곳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누워서 고민했다. 2층 침대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쏙 빠져 배고픈지도 모른 채.
그의 그을린 피부를 보면 현지인인가 싶을 정도였다. 처음 만났을 때 세계여행 중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요리를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말에 동생처럼 대견스럽기도 했다. '고작' 매운 한국 라면과 반조리 상태의 떡볶이였지만 나보다는 그가 나을 것 같았다. 더운 나라에다가 차마 조리 과정을 지켜볼 수 없을 정도의 위생상태를 지닌 식당들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한국 음식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그의 손은 남달랐다. 한꺼번에 먹게 해주겠다며 열악한 호스텔의 주방 시설을 이용해 빠르게 음식을 준비했다. 여태껏 먹은 떡볶이 중에 가장 맛있는 떡볶이였으며, 너무 매워서 입술을 훑기도 어려운 라면이었지만 매운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먹었다. 매운맛을 중화시켜줄 치킨 너깃도 좋은 음식이 되었다. 정말이지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는 음식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만큼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안전하고 깨끗하되, 주방이 있는 호스텔을 찾느라 며칠을 숙소 찾기에 쏟았다.
18일의 시간 동안 나는 매일, 그게 무엇이든 간에 딱 하나씩 했다. 어느 날은 밀린 빨래를 돌리고 멍하니 하늘만 보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간단한 라면과 떡볶이를 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서핑을 한 다음 날은 온몸에 두드려 맞은 파도 자국 때문에 옴짝달싹 하지 못하기도 했다. 밥보다도 면이 그리워질 때, 그것이 비록 5분이면 완성되는 라면일지라도 행복했다. 내가 왜 6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돈을 들여 무더위에 고생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싶은 후회로 가득 차 있다가도, 아주 짧은 순간순간에 행복을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은 고작 친구들과 라면 끓여 먹은 게 다였다는 일기를 쓰려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에게 한국 냄새 가득한 음식을 선물했다고 적었다. 돌아갈 날이 많이 남았지만 세계여행 중인 친구가 아직 옆에 있으니 외로운 시간을 보다 잘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볍지만 마음 한구석을 뭉클하게 만든 그 식사는 내게 정말 훌륭한 만찬이었다.
훗날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더라도, 바다와 노을이 예쁜 어느 도시에서 끓여준 라면과 떡볶이의 맛을 다시 내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이 지나 문득 고파진 배를 달래기 위해 먹는 라면도 그보다는 맛이 없을 것만 같다.
그리운 순간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요리. 그것은 결코 같은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