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고 하는 후회보다는 해보고 하는 후회를 택합시다.
마지막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녔다. 돌아올 곳이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짐을 꾸리기도 했다. 내가 열댓 번 정도 되는 여행길에 오를 때마다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엔 후회 없는 여행을 하자.
그렇지만 돌아올 때가 되면 순간순간 후회스러운 일들만 뇌리를 스쳤다. 인간이니까 후회도 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학창 시절의 스승님의 말씀이었다. 어린 제자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당신의 말을 매번 가슴속에 새기면서도 후회를 할까. 나는 끝을 생각하느라 '지금'을 놓치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유독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여행이 있다. 습관처럼 기록을 했음에도 잘 떠오르지 않는 여행들이었다. 떠올리기 힘든 여행은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한 여행이었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돌아보는 것을 잊을 정도로 옆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쓴 탓이었다. 혼자가 아닌 여행은 대부분 엄마와 함께였으며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진 채 엄마와의 여행을 여러 번 감행했다.
엄마와 함께일 때는 생각보다 고려할 요소가 많았다. 사실 나보다 더 체력과 정신력이 뛰어난 엄마였지만, 딸로서 당연히 신경을 써야 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여행을 다녀서였을까. 오히려 더 많은 후회가 남았다. 더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한 후회, 더 다양한 곳을 가지 않은 후회, 그리고 좀 더 다정한 여행 동반자가 되지 못한 후회. 엄마에게는 나보다도 더 마지막에 가까운 해외여행일 텐데 말이다. 다행히도 엄마는 늘 좋은 여행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지 않는 것. 엄마와 함께 한 이 여행,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만큼이나 여행의 내공이 두텁게 쌓인 사람이었다. 그의 연륜이 부럽기도 했고 방문한 나라가 가보지 않은 나라보다 많을 것만 같아 여행자로서 존경스럽기도 했다. 그가 여행을 하는 방법은 정말이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었다. 아주 일상 같은 여행. 잘 알지 못하는 길이더라도 지도보다는 바람결을 따라다니는 여행.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관광객이 많지 않은 나만의 명소를 만들어가는 여행. 남들 다 사는 기념품 대신 길 가다 보이는 앤티크 숍에서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컵을 몇 개 집어오는 여행.
어쩌면 그는 보다 많은 나라를 보다 여러 번 다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코 일반적이지도 평범하지도 않다. 그런 그가 좋았다. 비단 나와 전혀 다른 심성을 지닌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그가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자신만의 색깔이 진한 사람.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사람. 이것이 내가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였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가 너무 완벽해 보여서 그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여기 무수히 많은 방법의 여행이 있다. 동반자의 유무, 기간, 교통수단, 다양한 목적 등. 누군가의 여행 스타일을 부러워할 수도 있고 또 따라 해볼 수도 있다. 깊은 후회가 내 몸 어딘가에 상처를 내지만 않는다면 후회도 얼마든지 해보아도 좋겠다. 아니, 설령 상처를 내더라도 그것이 너무 아픈 흉터로 남지만 않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노천카페에서 얼마나 쓴지도 모르고 멋들어지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해보는 것.
펍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잘생긴 청년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권해보는 것.
흔쾌히 허락해준 그에게 가벼운 허그를 해주는 것.
사람 많은 광장에서 모르는 남자가 주는 장미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드는 것.
길 가다 만난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
버스킹 하는 멋진 할아버지에게 활짝 웃어주는 것.
뭐든 해보고 후회하면 어떠한가. 해보지 않고 하는 후회보다는 덜 쓸 텐데.
게다가 후회는 마지막을 넘어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주는 원동력일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