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주제 중 하나는 이상형이다. 우리는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 때로 이상형과 같은 개인의 취향에 대해 묻곤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내 이상형의 첫 번째 조건이다. 외모나 성격은 그다음이다. 사실 모든 일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그 또한 달리 정의되기도 한다. 나에게 직업에 대한 귀천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달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부―심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왔다고 하면 사람들의 질문은 늘 한결같았다.
무슨 일을 했는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나는 자신 있게 내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대답했다. 해상운송을 빼놓고는 우리나라의 산업을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바다와 관련된 산업은 당연히 발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토록 글로벌한 시대에 세계 무역은 결코 망할 수 없는 산업이기도 하다.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도맡아 했는지 묻기도 했다. 내 나름대로 쉽게 설명했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내 대답에 겨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간단명료한 답변을 찾았다.
외국에 수출한 물건, 현지에서 수입자가 찾으려면 서류가 필요하잖아요.
제가 그 서류를 만드는 일을 했거든요.
라고 조금은 우쭐대며 말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지를 선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다와의 연관성이다. 일을 하면서 늘 꿈꿔왔던 것이 세계의 모든 항구 (Port) 도시들을 가보는 것이었다. 꽤 오래 담당하던 지역이 중동이었기에 이란(Iran)의 퀘심(Qeshm)이나 반다라바스(Bandar Abbas),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의 제다(Jeddah)나 담만(Dammam), 요르단(Jordan) 등과 같은 곳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의 몸이고 여행 초보였던 나는 선뜻 그런 나라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무서웠다. 또한 크루즈 세계여행을 하지 않는 한 항구 도시만을 골라서 여행하는 것도 사실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결국 여행하고 싶은 수많은 국가와 도시에서 궁금했던 항구를 가능한 들러보는 방법을 택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할 때나 현지에서 근교 여행을 떠날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항구와 컨테이너, 그리고 감히 그 크기를 상상할 수 없던 크기의 선박들이었다.
나는 과연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일까. 천편일률적인 질문이 오가는 여행자들과의 만남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여행에서도 계속되는 나의 관심사가 '바다'라는 것. 관심의 이유가 뙤약볕 아래의 해변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 해지는 마음도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둔 수많은 이유 중에 사실, 일이 싫어서, 라는 이유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