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이 식히고 그래요, 항상 뜨겁기도 모자란 마음인데.
그녀가 말하는 '담백해지자'는 말은 그 의미 그대로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그녀가 내뱉은 단어를 깨닫기까지 나는 꼭 열흘이 걸렸다. 그리고 그보다 더 완전히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기까지는, 글쎄, 아마 나는 담백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지도 모르기에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여행에 있어서는 말이다. 여행 중에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대해 욕심쟁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욕심이 지나쳐 마음이 어떤 색에 물들기도 하니까.
담백―하다
1.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2.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4. 빛깔이 진하지 않고 산뜻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처음엔 언니나 엄마와 같은 마음에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가 없이 잘해주는 사람은 없기에 마음 한 켠에 언젠가 내게 무언가 바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 고작 4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참 의심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조심성이 없던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다리를 다쳤고 결국 보호대를 찬 채로 여행길에 올랐다. 그녀와는 우연히 여행의 며칠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혼자였더라면 해낼 수 없는 여행이었을 것이다. 타지에서 밤새 앓으며 눈물을 삼켰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항상 내 발목을 걱정했다. 있는 힘껏 마사지를 해주기도 했다. 긴장했던 몸이 풀리고 이제야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시큰거리는 발목보다도 이제는 고마움에 뭉클한 마음이 무거워 오래 걸을 수 없던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그 시간 동안 항상 내 뒤에 있었다. 힘겹게 걸어가는 나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고 다시 득달같이 달려와 내 손을 잡아주었다. 혼자만의 여행을 고집하던 내가 같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녀만큼은 욕심이 났다.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이 언제나 쿨할 수 있을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에 나오는 명대사다. 쿨하다는 말이 언제부터 통용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맥락에 따라서는 담백하다는 말과도 비슷할 수도 있겠다.
나는 결코 인간이 쿨할 수도 담백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모든 것에 있어서 깔끔한 것. 과연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없다고 본다. 나 또한 절대 쿨할 수도 담백할 수도 없는 인간이니까.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당신은, 우리는 한없이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여행 중에는 우리, 쿨해지지도 말고 욕심 없이 살지도 말고 언제든 물들 수 있는, 차라리 까만 마음을 가지고 살자. 욕심 좀 내면 어떠한가.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돌아서는 일 따위 못하는 사람이어도 괜찮다. 질척거린다는 말 좀 듣는다고 세상이 무너지나. 갖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격하게 매달려 보면 또 어떠한가. 원래 계획과 달리 이곳이 너무 좋아 며칠 더 있다가 떠나도 그만 아니겠는가. 언제 다시 이와 같은 여행을 할지 모르는데. 인생 겨우 한 번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