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외투 1

인아와 성훈 이야기

by 리아

선배의 전화를 받고 뛰어 나간 시간은 무려 12시 즈음이었다.

"아버지가, 가셨어."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힘이 없었고, 울음마저 섞여 있었다. 지금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갈게, 조금만, 기다려요."

택시 할증이 무서워 차라리 새벽 4시가 되도록 술을 먹자고 하던 내가, 할증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 주저하지 않고 택시를 잡았다. 일산에서 서울대학병원. 무려 1시간의 거리를 30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그는 미처 다 차려지지 못한 장례식장 앞에서 멍하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훈 선배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잦은 음주와 폭언에 못 이겨 결국 이혼을 선언했다. 그의 나이는 겨우 열셋이었고 그때부터 온갖 집안일은 자신의 몫이었다고 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자취를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죽도록 미웠고 자신이 왜 아버지에게 남겨져 가장 예민하고 힘든 사춘기 시절을 아버지라는 작자 밑에서 보내야만 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존재였다. 맞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어 학창 시절 흔히 말하는 일진들이 무섭지도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게 들렸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고 등교와 하교 시에 자전거를 타는 그 시간만큼은 자유를 얻은 것과 같은 기분이라 말했다. 그는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게 또 혼자 고립되어 어쩔 줄을 모른 채 대학 생활을 보낼 것만 같아 두려웠던 나에게 작은 불씨가 되었다. 우린 그렇게 그냥 어쩌다 마주친 깊은 인연이었다.

그런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가 차라리 기뻐 날뛰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의 아들이었고 죽은 자의 상주였다. 차라리 기뻐서 날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래, 아주 조금 후레자식의 생각이다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짙은 슬픔이 느껴졌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을지라도 그의 아들이었음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아버지는 아픈 존재였다.

장례식장은 너무 조용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새벽 1시를 향하고 있었고 그 시각에는 더 이상 찾아오는 조문객들조차 잘 없기 때문이었다. 빈소는 매우 조촐하게 차려졌다. 생전 모아둔 돈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양반이었기에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제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내게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뭘 어떻게 와, 이 시간에. 택시 탔지."

"고마워."

"고마우면 얼른 상복이나 챙겨 입어요. 상주가 눈물, 콧물 찔찔 짜면서 정신 놓고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

그가 다행히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남의 결혼식은 자주 다녀 봤어도 이토록 휑한 상갓집은 처음이라 이상했다. 공기가 어색했다. 살면서 수많은 어색함을 마주했지만 이토록 무겁고 칙칙한 공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의 죽음을 한낱 방 한 칸으로 배웅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려왔다. 그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맞이 해야 하는 가족과 지인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나는 종일 상주 노릇을 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애꿎은 꿀떡만 집어 먹었다. 조문객은,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출근을 하는 길인 것처럼 보이는 조문객들이 왔다. 그들은 모두 검은 정장을 잘 차려입고 있었다. 선배에게 이런 사람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훤칠하고 말쑥한 모습의 남자 무리도 있었다. 그들은 간단하고, 어찌 보면 추레한 옷차림을 한 나를 보며 아주 잠시 쑥덕거렸다.

"미안해."

그들이 캔커피 몇 개를 집어 들고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집안 어른들이 오셨다면서 잠시 쉴 시간이 생겼다고 선배가 내게 와 말했다. 왜 그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는지 나는 아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선배의 지인들이 아니었던 그 양복쟁이들은 선배의 어린 와이프쯤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그 사람들이 나를 누구로 생각하는지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새벽부터 밤을 꼬박 새운 나는 애써 기운을 차려 말했다.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말뿐이라 나는 그게 더 미안했다.

내게 전화했던 자정쯤보다 일찍 돌아가셨기에 삼일장은 매우 짧았다. 하루 종일 많이 오지도 않는 조문객들을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든 나에게 곧 발인이니 가보라고 했다. 나는 차마 장례식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하나뿐인 남동생은 일본에서 부고 소식을 듣고도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고 하니 상주는 오롯이 선배뿐이었다. 다행인 건 친구들 몇 명이 운구를 위해 온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라며 나는 모르는 얼굴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이 와중에 장례식장에서 꼬박 이틀 밤을 지낸 나에 대한 걱정이라니. 세심한 남자였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다.

"집안 어른들 오시면 뭐해, 어차피 발인도 안 보고 가시는데. 있을게요, 나라도."

선배는 나의 고집이 황소고집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 이상 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내심 고맙기도 했다. 요즘 누군가의 죽음을 보며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있는 동안 나는, 어떤 감정조차도 낭비에 불과한 삶을 사는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야만 하는’ 취준생이었다.

집에서 안겨주는 취업 스트레스는 갓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에게 치명적인 독이었다. 워낙 올빼미 형 인간이라 아침잠이 많고 밤잠이 없어, 이 날 이때까지 출근을 하는 아빠에게 늘 잔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졸업을 했으니 취직을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 당연한 순리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조금 더 나를 지켜보고 싶었다. 부모님 세대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꿈만 먹고사는 ‘꿈나무’였다. 그들을 이해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당신들과는 다른 삶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인정해달라는 말도 마음도 없었다. 내가 아는 ‘평범하게 사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그저 알려주고 싶었다. 선배는 내가 집안의 이런 이야기들을 할 때마다 웃기만 했다. 그리고 꼭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 그게 제일 힘든 일이야. 넌, 그걸 할 수 있는 거고.

선배의 말이 우스웠다. 이미 너무나도 평범해서 남들처럼 똑같이 회사에 들어가야만 하는 내 상황을 내가 싫어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주 평범한 대학생은 평범한 직장인을 거쳐 또다시 부모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게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범한 것이 그런 것이라면 나에게 평범하게 사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선배에게는 나와 달리 그런 평범한 가정도 평범한 대학 생활도 모두 사치였다는 것을. 그의 말대로 평범하게 사는 것이 그에게만큼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발인 아홉 시래. 좀 더 눈 붙여. 갈 때 깨울게."

나보다 더 긴 시간을 뜬 눈으로 지새웠을 그가 나에게 말했다. 이대로 두면 꼭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며칠 전에 휴가를 냈다고 하니 그 아까운 시간을 모두 병원에서 보냈을 게 너무나도 뻔했다.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보다도 아파 보였다. 정말이지 얼굴은 피죽도 못 먹은 사람 같았다. 나는 일본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얼굴도 모르는 그의 동생을 부르고 싶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가장 먹고 싶은 거 뭐예요? 아무렴 사람인데, 몇 끼를 굶었으니 먹고 싶은 게 하나쯤은 있겠지."

그는 뭔가 싶어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얼른, 나 이대로 쓰러져서 못 일어나기 전에."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붕어빵.

미워하다 못해 증오했던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는, 붕어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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