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결이 있는 단편소설

첫 번째 이야기, 낯선 전율 / 결

by 리아

링거를 맞은 덕분이었을까 생각보다 지독했던 몸살은 금세 나았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별 것 아니라며 민망해 할 것만 같아 그만 두었다. 다른 낯 간지러운 말 없이 그냥 전화를 했다.

별 일은 무슨. 그냥 집에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돌아온 대답은, 오래 고민하여 어렵사리 말을 꺼내기 위해 고심했던 나의 시간을 무색하게 할 만큼이나 단순하고 허망했다. 계속되는 야근에 짬을 낼 수 없어 미안하단다. 며칠 전과 달리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S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나는 그저 괜찮다는 말로 야근하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냉동실에 넣어둔 맥주는 금방 차가워졌다. 살짝 언 맥주가 좋은 이유는 벌컥벌컥 마시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급한 성격 탓에 뭐든 금방 해치우려고 하는 습관이 있었고 술을 마실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이든 서두르면 체하는 법이라는데 어쩌면 나는그런 성격 때문에 연애마저도 서두르다가 이렇게 망가뜨렸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자니 이별 후의 일반적인 증상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또 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울고 싶지 않았다. 콘서트 장에서 부은 눈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았다.

맥주 덕분에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겨우 한 캔에 불과 했지만 술이 약했던 나는 늘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맥주 한 캔을 찾았다. 여전히 비가 왔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또 다시 우울해질 것만 같았다. 길이 막힐 게 분명하여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왔다. 오빠의 말이 떠올라 다시 들어가 얇은 겉옷을 챙겨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 출발해도 만나기로 한 시간에 도착을 할 수 없어 보였다. 버스 정류장까지 달렸고 겨우 탑승한 버스 안에서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려도 아직은, 여름이었다.

공연장에 다다르니 더욱 길이 막혔다. 결국 두어 정거장 전에 내리기로 결심하고 정차 벨을 눌렀다. 휴대폰이 울렸지만 우산을 쓰고 달리는 탓에 받을 새가 없었다. 한참을 달리니 저 멀리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치킨과 맥주가 담긴 봉지가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는 한참을 달리다가 멈춘 나를 보고 기분 좋게 봉지를 흔들었다.

공연장에 들어선 나와 오빠는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 치킨을 꺼내어 차리는가 싶더니 오빠는 내 어깨에 자신의 옷을 걸쳐주었다. 비에 젖어 나도 모르게 떨고 있었는가 보다. 옷을 걸치고도 떨리는 것은 비단 비에 젖었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맥주를 꺼내어 나의 손에 쥐어주는 오빠의 손에서 그의 옷만큼이나 따뜻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 공연의 끝이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알려고 하지 않아 지금껏 모르고 살았던, 그것은 기분 좋은 낯선 전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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