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외투 3, 마지막

인아와 성훈 이야기

by 리아

장례식이 끝났다. 장지까지 같이 가겠다는 나를 말리며 선배는 앞으로 한동안 바쁠 거라는 말을 건넸다. 자기를 찾지 말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뜻을 알았지만 차마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남녀 사이를 너머 인간적인 관계로 꽤 오랜 시간 함께 담을 쌓아온 선배를 그냥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어버린 시신이 불구덩이에 들어가 한 줌의 가루로 변하는 동안에도 울지 않았던 그를 결코 혼자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그가 복잡한 마음속을 달래러 피우지 않던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그의 휴대폰에 저장된 동생의 연락처를 훔쳤고 선배로부터 받았던 이천 원을 다시 곱게 접어 장례식장 한편 옷장에 있던 회색의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선배에게 연락이 온 것은 장례식으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나는 여전히 구직을 위해 이력서를 쓰고 있었고 마침 한파가 물러나 술이 당기던 참이었다.

"퇴근 일찍 했네요?"

수많은 양복쟁이들이 오가는 서울 시내의 한 빌딩 앞에서 서성이다 아는 얼굴인 선배가 반가워 기분 좋게 말을 했다. 장례식 때보다는 많이 나아진 얼굴이었다.

"학교 근처로 갈래?"

"에? 회사 근처로 불러놓고 웬 학교 근처래? 낯설지만, 난 좋은데 이 근처."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혹시라도 동료나 선배, 아니면 거래처라도 만나면 나보단 네가 당황스러울까 봐."

나도 나지만 그가 더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할 것을 알기에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학교 근처라면 이제는 더 이상 선배 또래의 학생들은 없을 것이고 나 역시 졸업을 했기에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선배와 내가 나온 학교는, 선배의 직장에서 불과 10킬로 반경 안에 있는 곳이었다.

둘 다 소주는 잘 마시는 편이 아니라 우리가 고른 곳은 막걸리 집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막걸리를 마시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다고 했지만 나와 그는 예외였다. 알코올 맛과 향이 짙은 소주보다는 어딘지 구수한 막걸리를 선호했다. 개강과 종강 파티 때마다 꼭 따로 시키는 사람도 우리였다. 음주 취향이 맞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한 일이었다. 다른 동기나 선후배들은 선배를 가리켜 그리고 항상 그 옆에 있는 나도 함께 가리키며 과의 이방인들이라고 했지만, 선배와 나는 괜찮았다. 이미 스물보다 어렸을 적부터 받아왔던 상처였기에 고작 그런 것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전의 상처들이 너무 깊어 농담 삼아 던지는 그깟 ‘이방인’라는 말은 상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주나 다름없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하여 이방인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이 또한 참으로 모순이었다. 이제 막 성인의 문턱을 넘어선 스물 언저리의 대학생들은 어른 흉내를 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선배는 내게 유일하게 시시하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시시하지 않은 남자라고 하기에는 고작 4년의 시간 동안만 알아왔고 또 그리 이성으로서의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 이런 말을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그도 충분히 알 것만 같았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니, 4년이란 시간은 충분히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어린 여자로, 예쁜 여자로, 좋은 여자 후배로 나를 대하지 않는다는 것. 선배가 내게 좋은 ‘사람’이었듯 나도 선배에게 좋은 ‘사람’ 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인생에서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친구가 한 명 더 생긴 기분이었다.

"우리 조금 웃긴 거 알아요?"

"뭐가?"

두 병 째인 막걸리를 병 째 탈탈 털어 입에 넣으며 그가 물었다.

"오랜 시간 여자와 남자가 아니라는 것."

술을 거하게 먹으면 습관처럼 하는 말이 나왔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곧, 내가 취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웃기지는 않아. 우습지도 않고. 많이들 그러지, 둘 중 한 명이라도 마음이 없으면 그렇게 오래 인연을 유지할 수 없다고."

선배도 잘 아는 부분이었다.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친구로 우리가 오래 인연의 끈을 유지할 수 있는가. 아버지를 잃은 지 고작 일주일 된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굳이 우정과 의리를 확인해야만 했다.

"미안해요, 요즘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한테 과연 진짜 친구가 있을까, 진짜 오롯이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뭐 그런 거."

"가족이 있잖아, 인아야. 근데, 나쁜 인간이라고 해도, 아니 나쁜 인간이었다고 해도, 아버지가 죽은 나한테 그거 너무 잔인한 물음 아니야?"

"그래서 선배가 좋아요. 정말이지 너무 나쁜 년 같은 생각이지만, 한 때 선배를 보면서 내 삶은 괜찮구나 싶기도 했으니까. 아, 물론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그냥, 어렸을 때와 다르게 오롯이 내 편 해주는 사람이, 가족 말고도 있구나 싶어서. 그래서 선배가 좋아요."

내가 술만 먹으면 꼭 자주 했던 말이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이상하게 선배의 얼굴이 슬퍼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 때문에 내가 곧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선배의 얼굴을 본 순간 한 남자의 인생을 크게 망쳐놓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언제 주문했는지 모르는 세 번째 막걸리 병을 들어 술을 따랐다. 그의 잔 역시 비어 있어 말없이 한 잔 더 따라 주었다. 이제야 얼굴이 서서히 풀렸다. 아주 잠깐 아버지 생각을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해해. 원래 자신보다 못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위안을 느끼잖아. 아, 그래도 내 삶은 저보다 괜찮구나, 그런 거.

"미안해요."

그의 눈을 차마 쳐다볼 수 없어 애꿎은 막걸리 병만 만지며 말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 오던 붕어빵이 그렇게 기억이 남을 줄 몰랐어. 어쩌면 난 알면서도 그냥 무시했던 것 같아. 더 이상 이딴 집구석에서 살기 싫어서.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아버진 꼭 이천 원을 쥐고 다니셨던 거야. 아들놈이 좋아하는 붕어빵 그 몇 개 사 오겠다고 말이야."

선배는 사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고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밤거리를 걷다가 뺑소니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었다. 결국엔 술 때문에 목숨까지 잃는 상황을 맞이했으니 아들인 선배로서는 술에 진절머리가 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 술을 입에 대는 이유는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좀 알아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말이 어딘지 아프게 느껴졌다. 오랜 투병 중이라고 알았던 내게 차마 뺑소니로 인한 입원이라고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른 누군가에게 아버지의 개차반 같은 인생을 더 이상 알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가족의 흠을 타인이 알게 된다는 것은 곧 내 얼굴에 침 뱉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말이다.

"술 많이 먹었으면 그냥 곱게 집에 들어갈 것이지, 왜 회사 근처까지 온다고, 그 시간에 나는 어차피 그 어디에도 없었을 텐데. 원망스럽더라. 그 흔한 버스 카드도 아까워서 안 쓰는 양반이, 이천 원이면 차라리 버스를 타지, 붕어빵 같은 거 사겠다고 그렇게 그냥 그 밤거리를 걸어왔다는 게."

말없이 선배의 손을 잡았다. 죽은 사람은 이미 하늘로 올라가고도 남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아파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어떤 기분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떤 말로도 사람이 빠진 그 허한 심장의 구멍을 채워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요, 우리 마지막 남은 이천 원 쓰러.

한참 그의 손을 쥐고 있던 내가 기운차게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늘도, 이것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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