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과 준우 이야기
"우리 강아지 오랜만에 보네."
가게 문을 열고 한참을 문가에 서있던 나를 보더니 할머니가 말했다. 휜 허리가 나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오랜만에,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날을 셌다. 꼭 한 달 만이었다. 엄마의 기일이 바로 한 달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카페 근처에 원룸을 얻어 살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준우와의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는 할머니를 서서히 잊고 있었다. 어린아이도 아니면서 할머니의 손에 자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이 지나고 가만히 혼자 생각을 했다. 할머니 손에 자랄 수밖에 없었던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철이 든 아이였다. 할머니 손에 자란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어린아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핑계였다. 잘 나가는 금융 회사에 다니는 그에 비해 나 자신이 초라해 보여서 그랬다. 나는 고작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였고, 가족이라고는 할머니뿐이었다. 그것도 어느 작은 동네에서 순댓국 집을 하는 할머니. 차라리 할머니가 순댓국이 뭐가 어떠냐고 말을 했더라면, 한 번이라도 그렇게 내게 엄한 표정으로 말을 했더라면, 나는 차라리 덜 나쁜 아이가 되었을 것만 같다. 매번 늦은 저녁으로 순댓국을 끓여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할머니가, 나는 미웠다. 그녀는 결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내게 늘 미안해하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잘못된 것은 없었다. 그래서 미웠다. 그녀의 삶이 나 때문에 더욱 기구한 것 같아 미안하고 미웠다.
엄마를 잃게 된 이유는 내가 아니었지만 할머니와 살게 된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아픈 엄마를 간병하며 지키던 아빠는 어린 딸을 혼자 둘 수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나를 맡겼다. 그리고 꽤 오래 나를 떠나 결국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아픈 엄마가 일찍 내 곁을 떠난 것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 모든 원망은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원망의 대상이 나를 오랫동안 지켜주어야만 했고 그렇게 살아온 할머니가 나 밖에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나 스스로가 미웠다.
강아지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대체 나는 언제까지 그녀에게 강아지인 것일까. 어쩌면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더라도 그녀에게 나는 강아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에는 그럼 나의 아이도 나도 모두 예쁜 ‘우리 강아지’ 일 것이다. 말없이 문가 테이블에 앉았다. 언제부턴가 주방이 보이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는, 언제든 바로 이곳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식사를 한다면 분명히 그 날은 체한 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좀 바빴어, 할머니."
밥은 먹고 댕기는겨?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신경성 위염이 온 나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녀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웃어 보이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의 웃음의 의미를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의 웃는 모습을 좋아한 그녀 때문에 나는 늘 더 힘들 때마다 미소를 지었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내 미소를 보고 나를 따라 웃더니 스뎅 쟁반도 받치지 않은 채 집게로 팔팔 끓는 순댓국을 들고 왔다.
"쟁반으로 들으라니까!"
용암이 끓듯 펄펄 끓는 순댓국과 뜨거운 뚝배기에 혹 화상이라도 입을까 늘 걱정했다. 그녀는 습관이 되어 여전히 손녀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집게로 뚝배기를 옮겼다. 데어도 아프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이제는 진심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데어도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픈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그녀가 살아온 세월만큼 오래된 그녀의 모든 피부는 많이 무뎌졌겠다. 세월도 세월이지만, 분명 딸을 먼저 보낸 아픔이 너무 커 다른 어떠한 아픔에도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녀의 쓰린 인생을 알게 되었는데도 내가 그녀에게 하는 ‘짓’이라고는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 걱정 어린 말투로 신경질을 내는 것뿐이었다. 투정만 부리던 못난 아이는 그렇게 자라서 한심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쟁반은 뒀다 뭐에 써!"
"반찬 옮길 때 쓰잖여. 후, 불어 먹어."
후, 불어 먹으라던 그녀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 숟가락으로 다대기를 한 숟갈 퍼서 풀었다. 그녀는 내 앞에 있는 순댓국을 숟가락으로 열심히 식혔다. 빨간 다대기가 그녀의 숟가락질에 서서히 풀어지고 있었다. 다대기는 그녀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원체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했던 나를 위해서 손님들에게 내어 놓는 다대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어렸을 적 다대기를 직접 만드는 그녀를 보고 ‘할머니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만들어 놓은 다대기가 너무 맛있어서 몰래 조금씩 퍼먹다가 걸린 적도 허다했다. 내게는 그저 ‘양념’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사랑이었다.
"미안해, 할머니."
몇 숟가락을 뜨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이 순댓국의 순대는 물론, 뜨끈한 국물조차도 넘길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목이 메었다. 나는 조금 더 정확하고 또렷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만 했다. 말을 내뱉기 전 마지막으로 뜬 뜨거운 국물이 몸속 어딘가로 흘러 들어갔다. 온몸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마치 그 국물이 눈물이 된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났다. 한 번 더 말하고 싶었다.
미안해… 할머니.
나를 어떤 눈으로 볼 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목구멍으로 눈물을 삼켜 내느라 여전히 목이 메었지만 나는 보다 정확한 발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이미 그녀가 풀어준 다대기 한 숟갈 덕분에 내 앞의 순댓국은 충분히 간이 되었지만,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더 짜게 될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일어나 깍두기를 가지고 왔다.
한참을 울고 정신을 차린 뒤에야 여전히 내 앞의 순댓국은 뜨겁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