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기 한 숟갈 3, 마지막

현과 준우 이야기

by 리아

준우와는 결국 헤어졌다. 그를 만나는 동안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에 대한 것과 나의 가족에 대한 것을 숨기려고 하는 내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권태기라고 생각했던 시기조차도 자신 있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엄마에게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행복했다는 말이었고, 그의 엄마에게 전한 말은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나의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지만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분명 아직 시간이 있었다.

"저예요."

대뜸 식당으로 전화를 걸어 말했다.

"웬 전화여, 이 시간에 가게루."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며칠 전에 들은 목소리와 본 얼굴이면서도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졌다. 엄마가 떠올랐다.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엄마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이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만 같았다. 나에게 엄마는, 할머니였다.

"금방 가요. 나 너무 배고프니까, 꼭 다대기 많이 풀어서 줘."

전화를 끊자마자 택시를 잡고 할머니가 있는 식당으로 총알 같이 달려갔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잠옷 바람에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은 그녀가 보였다. 어지간히 걱정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늦은 밤 전화를 걸어 밥을 먹으러 가겠다는 손녀를 보고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혼 이야기가 나왔어. 초여름에 하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밖에서 나무랑 하늘 보면서 하고 싶다고 했어."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할머니는 말없이 다대기를 한 숟갈 퍼서 뚝배기에 넣었다.

준우씨한테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어. 나는, 할머니, 가족이 없다고 했어.

다대기를 풀던 숟가락이 소용돌이를 멈추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이 어딘지 서글펐다. 이해했다. 아니, 나는 결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죄책감이 들었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하는 처지였다.

"좋아하는 남자 아녀? 결혼 할라 했던 거면."

내 걱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나의 마음이 아플까 더 길게는 묻지 않는 그녀였다. 나의 구차하고 못났던 거짓말보다도 지금 나의 마음을 더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라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고, 사랑했다고 말하면 나는 물론이거니와 할머니의 마음까지도 아파질 게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말할 수 없던 말들이 목구멍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뜨거운 국물과 함께 겨우 모든 말들을 삼켜냈다. 그녀의 시선이 한참 느껴졌다. 내가 이 밤중에 뜨거운 순댓국 한 그릇을 모두 비울 동안 그녀는 어떤 말도 없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던 내가 그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용서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나만 보고 살아온 그녀에게 나는 더 이상 잔인해질 수 없었다.

잘혔어.

마침내 밥알 한 톨 남지 않은 뚝배기를 내려놓자 그녀가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내가 잘한 게 있을까. 무얼 잘했다는 걸까. 아무리 곱씹어도 내가 잘한 짓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습관처럼 잘했다고 한 것일까. 더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든 한 마디였지만, 나는 겨우 그녀의 위로를 품었다. 설거지조차 필요 없어 보이는 뚝배기를, 여전히 뜨거운 그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허리가 유난히 더 굽어 보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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