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와 태정 이야기
먹는 방법은 단순했다. 날것의 음식은 날 것 그대로의 맛을 느끼기 위해 언제나 최소한의 곁들임만 있을 뿐이었다. 길게 채 썰어 나온 배와 녹색의 새싹은 육회를 더욱 붉게 보이도록 만들어주었다. 젓가락질을 망설이는 나를 위해 태정은 먼저 배 두 조각과 새싹 조금, 그리고 주인공인 육회 적당량을 집어 한입에 넣었다. 오물오물하는 그의 입 속에서 종종 배가 아삭하게 씹히는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냥 육회만 먹어도 식감은 좋지만, 처음이면 배를 좀 많이 먹는 게 좋을 거예요. 사람마다 입맛은 다 다르니까.”
친절하게도 먼저 시범을 보여준 그가 말했다.
“안 비립니까?”
젓가락 끝으로 육회를 한 가닥 들어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망설이는 내 젓가락을 톡 치고는 이번엔 육회만 몇 가닥 집어 먹었다. 그의 도발에 괜히 지는 기분이 들어 그가 알려준 방식대로 배 몇 조각과 새싹 조금, 그리고 붉은 제 살빛을 내보이고 있는 육회 몇 가닥을 집어 눈을 살짝 감고 입에 넣었다. 아삭하게 씹히는 배와 입 안 곳곳에 퍼지는 알싸한 새싹은 비릴 것이라 생각했던 육회의 맛을 한껏 돋워 주었다. 계속 씹다 보니 배에서 나온 단물인지 아니면 육회 본연의 맛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단맛이 느껴졌다.
“한 병 가지고 안 될 음식이죠?”
썩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육회를 집어 먹는 내게 그가 놀리듯 물었다. 나도 모르는 새 소주병은 내 앞에 와 있었고 그는 눈치껏 냉장고에서 소주를 한 병 더 꺼내왔다.
회사는 참 재미있는 조직이에요.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렇고요. 사무실 안에서는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데, 또 이렇게 밖에서 만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갖곤 하잖아요. 재미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어디선가 받아온 날계란의 노른자를 육회와 잘 섞으며 그가 말했다.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제 나에게 묻지 않은 채 음식과 술을 마음대로 하고 있었다. 처음 맛보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여전히 육회를 씹을 때의 느낌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거부감이 덜한 것은 사실이었다. 살짝 언 부분을 씹을 때는 서걱서걱 소리가 나 어딘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자, 이제 달달한 배도 약간 쌉쌀한 새싹도 부드러운 날계란의 노른자도 모두 섞였어요. 주인공인 육회까지 모두 모이니까 제법 색감이 더 예뻐진 것 같네. 노른자를 섞지 않았을 때보다 육회가 좀 부드러워 보이죠? 그냥 육회는 왠지 뭐랄까….”
발가벗겨진 기분?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말이 그의 언어를 되받기 위해 툭, 튀어나왔다. 부끄러운 표현이었지만 그것이 내가 느낀 사실이었다.
“맞아요. 정말 날 것 그대로니까.”
내가 머쓱하지 않게 웃으며 그가 공감을 표했다. 어느새 우리는 두 빈 병을 만들었고 언제 가지고 온 지 모르는 새 소주병이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다. 나는 서서히 취하고 있었다. 알코올이 자꾸만 쌓여가면서 몸속 어딘가에서 끓고 있는 콤플렉스에 대한 말이 자꾸만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술을 좋아하면서도 잘 먹지 않는 이유였다. 함께 술을 마시고 내 앞에서 있는 사람이 편해지면서 기대고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의 콤플렉스는 다름 아닌 완벽주의자 콤플렉스였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어떠할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직장에서도 직장 밖에서도 나의 삶은 완벽해야만 했다.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는 나의 노력은 결코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완벽주의자 콤플렉스는 내가 항상 깊은 잠을 잘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규칙적인 식사와 규칙적인 삶을 위해 노력함에도 잠은 인위적으로 조종할 수 없었다. 피곤에 절어 잠에 들어도 머릿속은 온통 다음 날에 대한 생각뿐이니 새벽같이 눈을 뜨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의 삶은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잘 아는 대학 선배인 성훈 선배는 때론 자신과 너무 닮은 내 모습이 무섭다고도 했다. 그는 희한하게도 불면증의 패턴마저 비슷한 사람이었다.
“사실, 술 많이 좋아합니다.”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나도 모르게 툭, 좋아하는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알아요. 우리 사이에 있는 술병만 몇 갠데요. 근데, 말씀 편하게 하심 안 돼요?”
태정은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취기가 올라왔지만 정신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간신히 제정신을 붙잡은 채 나지막이 말을 시작했다. 서서히 편한 말투가 나오고 있었다.
“일 잘해서 참 대단해 보이죠? 눈 뜨고부터 그 날 눈을 감을 때까지, 꽤나 완벽… 하죠. 누가 봐도, 내가 봐도. 근데 나는요, 항상 피곤해요. 왜 그거 있잖아요.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거, 만성 피로.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해서 나도 괜찮은 건 줄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살았어요, 어쩌면, 대학 때도 아니 그 이전에도 그랬는지도 몰라요. 우습지. 늘 잠을 설치고도 습관처럼 아침에 눈을 뜨고 좀비처럼 사는 내 모습이.”
그는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는 또 말없이 나의 빈 술잔을 채워 주었다. 나는 점점 꼬부라지는 혀처럼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손가락을 이용해 노른자에 흥건하게 적셔진 육회 한 가닥을 들었다. 미끌미끌했다.
“재미있는 주사가 있네요. 말도 점점 편해지는 것 같고.”
“이런 날 음식 먹으면, 왠지 정말로 내가 사람이 아니라 좀비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먹지 않았는데. 이거 맛있네, 젠장….”
손가락으로 집어낸 육회를 입에 넣고 내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는 그의 미소에 점점 더 마음이 놓였다.
뭐든 누구든 처음이 어려운 거래요. 일단 한 번 저지르면, 그다음부터는 처음보다 쉬워지고 또 그다음은 더 쉬워지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그는 마지막 남은 술을 털어 넣고 계산이요, 하며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