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등을 위한 밤 2

인아와 태정 이야기

by 리아
배 안 고파요?

나는 무심코 손목시계를 봤다. 습관적으로 7시에 아침을 먹고 12시에 점심을 챙겼으며 5시에는 사무실 내에서 간단한 건강식을 먹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면 10시 즈음이 되어 대충 허기를 채울 만한 것으로 마지막 식사를 때우곤 했다. 끼니를 챙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배가 고프면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불을 끄고 한참을 누워 있어도 허기가 지면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래서 단순히 허기를 채울만한 음식을 ‘섭취’했다. 습관이었다. 내가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한 음식은 정말이지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실 입사 초기에는 회사 주변의 식당과 술집을 다니는 낙이 있었다. 그러나 서서히 변해갔다. 혼자 사는 직장인의 삶에 ‘맛있는 음식’은 없었다. 겨우 스물 중반의 나이에 맛있는 음식 하나 없이 지루한 삶을 살게 된 내가 문득 안쓰러워졌다.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이런 것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그처럼 악착같이 취업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갑자기 허기와 함께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선배?”

“괜찮습니다. 집에 가서 먹으면 돼요.”

“너무 깍듯하셔서 제가 더 민망한 거 아세요?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 놓은 거 아니면, 같이 식사하고 가요.”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어느 지역마다 똑같은 모습으로 있을 것만 같은 시장 골목이었다. 이 시간에 시장 골목 어귀로 여자를 데려가는 남자의 심리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겁이 나지는 않았다. 평소에 하던 마지막 식사 시간을 넘기고 허기와 함께 불안감이 찾아올까 그것이 조금 걱정될 뿐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대체 뭘 파는 건가요?”

“걱정 마세요. 이상한 데 모시고 가는 건 아니니까. 아, 오늘 아침에 저 타박하신 거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제가 실수한 거니까.”

그는 좁은 골목을 앞장서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로등 불빛이 그의 뒤통수에서 후광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을 가르쳐 줄 때와는 달리 어딘지 그가 어른 같아 보였다.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걸까.

자, 제 집 다 왔어요. 좀 많이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열심히 앞장서 골목을 휩쓸고 지나가던 그가 마침내 작은 식당 앞에서 멈추며 말했다.

“제 집?”

나는 가로등보다도 못한 허름한 간판의 활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반문했다. 제집. 자세히 보니 ‘형’자가 있었고 그것은 불이 나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제 집인 양 소개하는 그가 재미있었다.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를 따라 들어간 ‘형’이 사라진 제집은 그의 말대로 허름했다. 원통형 테이블이 세 개정도 있었고 의자 역시 원통형이었다. 서울 한복판 어디에나 있을 법한 붐비는 고깃집의 모습이었다. 다행히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거의 병적으로 싫어하였고 그것은 내가 맛집을 찾아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곳에 맛집이라니 좀 놀랍죠?”

내 속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물었다. 그는 능숙하게 물을 따르고 휴지 한 장을 뽑아 수저를 내 앞에 깔아 주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냉장고에서 소주를 한 병 꺼내어 두 개의 투명한 잔과 함께 가지고 왔다. 나는 그를 제지하려다가 이내 관두었다. 그의 행동이 워낙 빠르기도 했거니와 한동안 먹지 못했던 술을 보니 심장이 빨리 뛴 탓이었다.

“누가 그러더라구요, 선배 술 엄청 좋아한다고.”

소주병을 쥐고 세차게 흔들면서 태정이 말했다. 부인할 수 없었다. 대학 때는 막걸리 외에는 입에도 잘 대지 않던 내가 입사 초반 온갖 회식에서 술을 좋아하는 티를 다 내고 다녔으니 당시 직원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아마 말 많기로 소문난 김과장이 내가 참석하지 않은 회식 자리에서 그에게 부풀려 말했을 것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싹싹하다고 칭찬이 자자했던 태정은 또 얼마나 김과장의 말을 경청했는지 보지 않아도 뻔한 그림이었다.

“신입 남자 직원이랑 따로 나와서 술을 먹었다고 하면 별의별 소문이 다 돌 지도 몰라요. 술은, 딱 한 병만 하는 걸로 해요.”

못 이기는 척 그의 앞에 술잔을 내밀었다.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냉큼 술을 따랐다. 그 나이 때의 남자답게 주도를 잘 배운 듯 보였다.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을 가슴 언저리에 대고 왼손으로 술병을 쥐고 술을 따랐다.

“왼손잡이였나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해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존중의 의미로 예의를 갖추어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래서 선배가 항상 제 오른쪽 앉아서 일 알려주셨는데.”

“그랬나?”

멋쩍은 마음에 나는 술잔을 부딪치지도 않고 혼자 단숨에 들이켰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웃더니 이내 내가 준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가 한 모금으로 끝내는 것을 본 나는 다시 어색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메뉴판을 찾기 위해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메뉴판은 없었고 아무도 보지 않는 낡은 티비만 천장에 붙어 제 소명을 다하고 있었다.

“여긴 메뉴가 한 가지뿐이에요. 사실 이런 음식 드실까 싶은 생각에 고민하긴 했는데, 선배처럼 멋진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 같아서요. 아, 혹시 못 드시면 말씀해주세요. 이미 주문은 들어갔지만, 여기 근처에 또 다른 맛집도 있거든요. 시장통이라 먹을 건 많아요.”

이 말이 배려하는 것인지 혹은 반 강제인 것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사실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의 말투는 다정했고 얼굴은 온화했지만 그가 내뱉은 몇 마디에는 강한 어조가 심어져 있기도 했다. 신입사원의 패기라고 하기에는 일과 너무나도 관련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냥 웃어 보였다. 심신이 피곤하여 대꾸할 기력조차 없었다. 이미 시계는 열한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세상모르고 야근하고 있던 나를 기다려준 그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현이기도 했다.

작가의 이전글소등을 위한 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