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 이야기
재하가 이른 아침 첫 출근을 하여 병원의 개장을 준비하는 동안 3동의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자신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운동하러 제시간에 나오지 않은 그를 기다리던 몇몇 아줌마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추측을 하다가 결국 한 명이 경비원 김씨에게 다가갔다.
“그 청년은 오늘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아저씨?”
“내가 어떻게 알아요?”
괜스레 퉁명스러운 말투로 김씨가 대답했다. 그녀는 민망한 나머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다른 아줌마들에게로 돌아갔다. 그가 없는 3동의 아침은 매우 차가웠고 또 황량하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출근을 마친 9시쯤, 1층에서 7살 난 아들과 둘이 사는 젊은 남자가 놀이터 앞을 지나갔다. 김씨는 한 번도 아이의 엄마를 본 적이 없어 늘 궁금했다. 아침마다 아이를 유치원 통원 버스에 태워 보내는 것도 언제나 남자의 몫이었다. 그는 오늘만큼은 아내 혹은 아이 엄마의 행방을 알아내고 싶었다.
“101호 아빠!”
급하게 발걸음을 떼던 101호 아이 아빠가 돌아봤다. 피곤이 얼굴에 가득했다. 김씨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지만 어딘지 께름칙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이 다 출근하는 시간에는 아이만 유치원에 보내 놓고 당최 모습이 보이지 않다가 해 질 녘에나 다시 나와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고, 밤이 되어서야 아파트를 나서기 때문이었다. 아이 아빠는 무슨 일이냐는 물음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불러 세운 경비가 짜증이 날 뿐이었다. 김씨는 그를 불러 놓고 마주한 그의 표정에 그만 질문을 잊어버렸다. 오늘은 왠지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난감하게 웃어 보이며 그저 좋은 아침이라는 말만 내뱉었다. 아이의 아빠는 대꾸도 없이 고개만 까딱하며 다시 제 갈 길을 향해 걸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조급한 발걸음이었다.
재하부터 젊은 아이 아빠까지 김씨에게 오늘은 매우 답답한 날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맑고 화창하게 시작해도 모자랄 월요일 아침,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참 요상하기도 허네, 날씨 하고는.
비가 쏟아지려는지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자 김씨는 얼른 경비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한편 재하는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에게 모두 밥과 물을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밖에 내어 놓은 러그는 곧 몰아칠 비바람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어쩌면 아무도 찾지 않을지도 모르는 고양이 동물 병원을 그는 기어코 열었다. 이사를 하고 나서부터 준비한 고양이 전문 동물 병원인데 희한하게도 그때부터 그의 눈에 띄는 길고양이들이 많았다. 말 못 하는 동물도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쉽게 알아보는 것일까. 고약한 경비 김씨와 그저 동네 분위기가 나빠질까 걱정하는 주민들 때문에 사람 근처에는 얼씬도 않던 녀석들이 하나 둘 그의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가 딱히 무언가를 챙겨주는 것도 없었다. 그저 염분을 쏙 뺀 참치 통조림뿐이었다. 그가 비단 수의사라서가 아니었다. 버려졌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쫓기는 고양이들이 어딘지 자신과 닮아서 마음이 갔다. 어렸을 적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처량해 몰래 울던 어린 날들이 자꾸만 오버랩되었다. 그에게 그런 길고양이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도 같았다.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은 결국 그가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들어온 아이들이었다. 그의 눈에 띄고 마음에 들어온 순간 그냥 둘 수 없던 탓이었다.
“비가 많이 오네.”
창 밖을 보다가 소나기처럼 퍼붓기 시작한 비를 보며 재하가 중얼거렸다. 개업 첫날부터 좋지 않은 날씨가 마음에 걸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심경을 아는 듯 러시안 블루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발아래로 와 낑낑거렸다. 그가 제일 먼저 구출해서 데리고 들어온 까망이었다. 까망이는 유난히 따뜻했던 지난겨울, 비가 많이 내리던 날 발견한 녀석이었다. 러시안 블루 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털이 까맸던 녀석은 구조되고 몇 번을 씻기고 돌봐준 다음에야 비로소 러시안 블루의 특유의 회색 빛 털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는 까망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까망아, 오늘 같은 날이면 어딘가에 또 너 같은 아이들이 있을 것만 같아.
그의 말에 대답을 하며 그릉거리던 까망이는 갑자기 사냥하려는 포즈를 취하더니 유리문으로 재빠르게 뛰어갔다. 깜박하고 밖에 널어둔 초록색의 러그가 툭, 빗물 가득한 바닥에 떨어졌다. 재하는 빗물에 젖어 축축해진 러그를 들고 들어오더니 이내 결심한 듯 참치 캔을 따서 염분 기를 빼기 시작했다. 비가 이렇게 퍼붓는 날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 어딘가에 또 까망이와 같은 고양이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작은 우산을 들고 우비를 챙겨 입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정장이 거추장스러웠지만 집에 다녀오기에는 어딘가에서 끙끙대고 있을 고양이들에 대한 마음이 앞섰다.
그는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부터 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길을 먼저 살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아침 내 있었을 법도 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왕복을 하다가 결국 다른 길로 빠졌다. 운동 기구가 있는 길 끝에서 인적이 드문 좁은 길이 있었다. 그는 더 세차게 부는 비바람에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양복 바짓단을 접어 올리고 그 길로 향했다. 그가 막 그 낯선 길로 들어서려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좁은 길은 풀이 우거져 길이라는 것조차도 모를 정도였지만 그는 풀숲을 헤쳐 나갔다. 주변은 온통 무릎까지 자란 강아지풀이 넘실대고 있었다. 마침내 결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어느 한 구석에 도착한 그는 작은 우산 아래에서 추위에 움츠리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발 밑에는 우유가 담긴 까만 비닐봉지가 널브러져 있었고 아이의 품에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아이의 눈이 애처롭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