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맑음 3

재하 이야기

by 리아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누구 애가 없어졌다는 건데?”

인아는 퇴근길에 준열의 전화를 받고 대충 가방을 둘러 멘 채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그와는 일주일의 시작을 외롭게 보내기 싫단 이유로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다. 정리를 하고 나온다는 것이 그만 과장에게 잡혀 시간을 보낸 사이 그는 이미 출발했다며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한 번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였기에 그녀는 더욱 당혹스러웠다. 그의 이런 모습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그의 뒤를 따라 택시로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재하의 동네였다. 그는 양복 바짓단이 다 젖은 줄도 모르고 비를 맞은 채 처량하게 놀이터 앞에 앉아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살아온 것처럼 보였던 그의 이런 모습은 그녀에게 가히 충격이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두고 볼 수 없어 우산을 편 채 다가갔다.

오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우산으로 그의 젖은 몸을 가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미 그는 흠뻑 젖은 상태였다. 그녀는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채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얼굴이나마 닦아주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그의 눈가에서 흘러 내렸다. 그녀는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그저 말없이 그를 꼭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린 아이처럼 작아져 버린 그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우는 그를 바라보기에 마음이 아파 조용히 숨을 참았다.

비가 그쳤다. 봄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쏟아진 이후였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하늘은 다시 화창했다.

“조카가 있어.”

정신을 차린 준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인아는 마음이 겨우 마음이 가라앉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휴대폰에서 사진을 찾더니 젊은 남자와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 아이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젊은 남자는 그와 매우 닮아 보였다. 사진 속의 남자는 그의 형이었다. 오늘 아침 다급하게 아파트를 나서던 101호의 아이 아빠이기도 했다.

준열은 원체 가족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저 누나만 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형과 그의 아들이라니.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막 존재를 알게 된 그 형의 아이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유치원에서 하원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제 그보다 그녀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이의 아빠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더불어 아이의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인 걸까. 여전히 그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자기의 아이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이토록 여린 사람이었나. 그러나 그녀는 우습게도 새삼 이런 상황이 닥친 것에 감사했다. 그를 만난 지난 날들은 모두 그의 강직하고 어딘지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모습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린 그에게 물어보는 것보다도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잠깐만 있어요, 알아보고 올게. 오빠는 형님한테 다시 연락해봐요. 혹시 그 사이 찾았을 수도 있잖아.”

그녀는 마침 담배를 한 대 물고 경비실에서 나오는 경비 김씨를 보고 달려갔다. 준열은 떨리는 손으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었다.

“여보세요.”

건조한 목소리로 그의 형이 전화를 받았다.

“나야.”

“알아.”

“…, 규현인?”

“아직.”

“형은 어딘데?”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대답할 기력조차 없는 형에게 자신이 다그쳐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오늘 애가 너무 아파서, 데리고 왔었어. 학원에서 수업 준비하면서 애랑 같이 있으면,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아서.”

“형은 어디냐고.”

화를 꾹꾹 누르며 그가 재차 물었다.

“비가 많이 오길래 눅눅한 학원보다 집이 나을 것 같아서 애 좀 두고 오려는데, 없더라. 몸이 불덩이 같았는데 대체 그 몸을 이끌고….”

니가 아빠냐?

그는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딘가에서 추위와 무서움에 떨고 있을 조카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엄마 없이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모든 내막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은 있는 줄 알았다. 그는 형이 갓난 아기를 안고 오던 날을 떠올렸다. 어느 누구도 아기를 따뜻한 눈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런 가족들의 냉담한 시선이 혹 아이에게 나쁜 영향이라도 미칠까 염려했다. 아이가 무슨 죄인가. 죄가 있다면 차라리 형에게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형에게도 감히 그 죄를 말할 수 없었다. 아이의 엄마와 달리 형은 적어도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으니 말이다. 매번 장남인 형보다 더 형 같다던 자신에게 쏟아진 기대와 사랑이었다. 오만해질 법도 했다. 혼자 잘난 척 형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그가 자신과 달리 세상 물정 모르고 한없이 어리게만 살 것 같았던 형이 어른으로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전화를 끊은 그는 자신을 따라 한달음에 달려온 인아를 찾았다. 그녀는 멀리서 경비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보다도 경찰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말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휘청거렸다. 온통 그답지 않은 행동들이었다.

“가자, 경찰이 빠르겠어.”

그녀의 손을 이끌며 그가 말했다.

“잠깐만, 경비 아저씨가 찾아봐 주신대. 주민들한테도 물어보고.”

“그래, 청년. 기다려보자고. 그나저나 101호 아빠랑 똑 닮았네.”

마치 아는 사람인 양 김씨는 친한 척을 하며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당최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그는 얼굴을 홱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고작 이런 동네의 경비 앞에서 눈치 없이 여전히 떨리는 손 때문에 자신에게 화가 더 났다. 그 때 애써 주먹을 쥐는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인아였다. 영문도 모른 채 와서는 내내 그의 곁에 있어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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