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 이야기
준열의 형은 많이 지친 얼굴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먹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동생인 준열과 달리 마른 몸의 소유자였고 준열이 살을 많이 뺀다면 그와 똑 닮았을 것만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경비 김씨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께름칙한 일이 아닌 동네 학원의 수학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그 이후에 학원을 가기 때문에 그의 출근 시간은 저녁 늦은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힘든 직업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등하원 할 때만큼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경비 김씨였다. 재하는 병원에 아이와 고양이만 두고 나갈 수 없어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고, 김씨는 그 길로 준열에게 달려왔다. 아이 아빠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김씨의 손을 잡았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젊은 아빠의 피곤하고 지친 일상이 그를 차가운 사람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인아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아이의 아빠, 즉 준열의 형에게 제대로 인사하고 싶었지만 조금 미뤄두기로 했다. 그녀가 준열의 다른 면을 알게 된 오늘이 기쁘고 그의 조카가 무사한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준열과 그의 형, 그리고 인아는 함께 경비 김씨가 알려준 구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이제는 더 이상 폐업한 낡아빠진 동물 병원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딸랑. 풍경 소리가 그들을 반겼다. 아이와 새끼 고양이의 곁을 지키고 있던 까망이가 소리를 듣고 나왔다. 재하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아이가 잠들었다며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그들은 모두 아이가 스스로 깰 때까지 숨을 죽이며 아이의 바라보았다. 준열은 인아의 손을 꼭 잡으며, 저렇게 예쁜 저 천사 같은 아이의 이름은 규현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손을 쥔 준열을 보며 인아는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한참 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도 재하의 동물 병원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제 아빠의 품보다도 재하의 품이 더 편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품에는 그보다 더 작은 새끼 고양이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안겨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엄마 또래의 여자도 아닌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젊은 남자 수의사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이의 행동이 마냥 당황스러웠다. 오랫동안 엄마의 품이 그리웠던 탓일까. 재하는 당황하고 어딘지 조금 겁을 집어먹은 듯해 보이는 아이 아빠에게 따뜻하게 웃어 보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길고양이를 이렇게나 신경 쓰는 아이는 처음 봤어요. 혹시 키우실 여력이 된다면, 제가 건강해질 때까지 돌보다가 데려가시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에 이제야 아이가 아빠를 눈시울이 붉어져 쳐다보았다. 키울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준열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아 줄 엄마도 가정부도 없는 마당에 자기만큼 작고 어린 새끼 고양이를 누가 돌보겠는가. 준열은 형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왠지 단칼에 거절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대신 나서 주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형에게 어떠한 선의의 행동과 그 마음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 그는 인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가 함께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인아는 준열이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슬며시 빼더니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의 문자를 본 인아는 그녀의 허락이 혹은 결정이 지금 아이의 심신을 모두 좌우할 수 있는 열쇠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제가 데리고 가면 안 될까요? 마침, 멀지 않은 동네에 사는데.
그녀는 아이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인사가 너무 늦었지? 이모는 규현이 아빠의 동생 친구야. 규현이 삼촌 못 본 지 꽤 오래됐다며? 규현이가 아빠한테 말도 하지 않고 고양이 보러 갔다고 해서, 삼촌이랑 이모랑 너무 놀라 규현이 찾으러 왔어.”
아이는 이제야 아빠를 한 번 보고 울먹거리며 아빠에게 달려갔다. 제 아빠의 품에 안겨 귀담아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무슨 말을 했다. 인아는 그 말이 분명 ‘아빠, 미안해,’ 일 거라며 준열의 귓속에 대고 속삭였다. 준열은 다시 한번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쥐었다.
“그럼 검사도 하고 다친 데 치료 좀 하고 건강해지면, 그때 연락드릴게요. 참, 저는 3동에 살고 이 고양이 동물 병원 수의사 이재하라고 합니다.”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작은 명함을 내밀며 재하가 말했다. 준열은 그가 건넨 명함을 보며 정말 잘한 짓인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결단력이 있고 책임감이 있다고 여긴 인아에게 어딘지 기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준열과 인아의 사이에 명함을 건네며 웃는 재하 때문에, 둘은 누가 받아야 할지 매우 망설였다. 결국 명함을 받아 든 것은 준열이었다. 인아의 집에서 살아갈 새끼 고양이지만, 준열이 냉큼 그의 명함을 받은 데에는 재하가 ‘젊고 훤칠한 남자 수의사’라는 이유가 있었다.
“고맙습니다. 장준열이고요, 저한테 연락 부탁드립니다.”
준열이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인아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나누는 남자 둘을 보며, 그들의 명함은 새끼 고양이의 안정적인 분양이 끝나면 쓰레기통 어딘가에 버려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존재를 위해 너무 많은 명함을 주고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풀숲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와 그런 고양이를 보듬어 주던 어린아이의 마음이 그들을 조금 더 오래 이어 주기를 바랐다. 늘 삶이 퍽퍽하고 차가울 수밖에 없는 준열이 자신의 사랑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을 받으며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인아는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아직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얼굴은 이미 화색이 돌았다. 아빠의 도움 없이 자신이 혼자 새끼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재하는 아까 풀숲에서 떨며 자신을 쳐다보던 애처로운 눈빛의 아이를 떠올렸다. 그 순간 기억도 나지 않던 자신의 어린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국에 들어와 친부모를 찾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그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더라면 너무 미안한 나머지 차마 그에게 연락을 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빠의 품에 안겨서 다시 웃음을 되찾는 동안, 재하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자랐던 어느 고아원의 연락처가 둥둥 떠다녔다.
창밖에는 비가 그친 후 날이 개어 무지개 한 쌍이 떠 있었다. 그들이 있는 이곳은 분명 고양이 전문 동물 병원인데, 모두가 제각각 아픈 마음을 치료받은 채 모여 있었다. 그런 그들의 주변을 따스하게 맴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까망이와 고양이 친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