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오래 보아야 하니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을 것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을 하는 나였다. 힘든 줄도 몰랐다. 여적 겨울인지 봄인지 모를 그 햇빛이 조금 사그라들 때 즈음, 마침내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지친 엄마와 나는 어떤 위화감도 없이 인종도 성별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미술관 아래 계단에서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해지는 뉴욕을 즐겼고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뉴요커였다. 엄마는 내게 이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을 하곤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말해주는 것. 그때 그곳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엄마가 나와 함께 한 첫 해외여행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어 나는 마냥 다행이라 여겼다. 우스운 사실은, 내가 엄마와 함께 지낸 시간이 엄마 생의 절반을 넘어버렸으면서도 나는 아직 엄마를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화려하고 비싼 뮤지컬을 좋아하고 기억할 줄 알았던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미술관을 나와 계단에서 보던 해 질 녘의 뉴욕을 잊을 수 없다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생의 전부를 같이 걸어도 서로를 모르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그럼에도 같은 시간을 걷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빛이 아름다운 어느 작은 도시였다. 너무 더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을 때쯤 마침 저기 보이는 계단에 앉아 잠시 쉬자고 말했다. 그는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계단에 걸터앉았다. 무더위에 청바지를 입고 온 내가 후회스러웠다. 우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런 우리 옆에는, 자신의 몸집보다도 큰 백팩을 털석 던지듯 내려놓은 다른 인종의 여자와 남자들이 오늘 처음 만났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더위에 넋이 나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처음 만난 이들의 대화가 으레 그렇듯 식상해질 때쯤 내 눈에는 그 뜨거운 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햇빛이 반사되어 내 눈을 멀게 할 지라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물빛이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그 물빛을 함께 바라보는 동행이 있었다. 사실 그 친구는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동행 중 하나였다. 그를 잘 모를 때라 그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만으로도 내 몸과 마음이 휘청거렸던 날들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그를 모른다. 고작 짧은 여행만으로 그를 다 알아버린다면, 그를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을 테니 아주 천천히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강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저 반짝이는 물처럼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나는 무슨 말이라도 내뱉어야만 했다.
이내 내 입에서 중얼거리듯 나온 말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가 자주 시려 차가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