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고 온 것은 네가 아니라, 그리움이었을 거야.
늦은 밤 도착한 런던 시내는 아주 뜨거웠다. 한겨울이었으면서도 말이다. 안테나가 하나도 세워지지 않는 나의 휴대폰을 보면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둘러멘 백팩에 누가 손이라도 댈까 잔뜩 움츠린 채 공항에서 친구가 살고 있다는 동네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래, 다시는 없을 그 '첫' 여행에서 나는 한없이 작고 어린 여행 초보자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즈음이었나. 졸업을 앞두고 아무 생각 없이 덜컥 열몇 시간 짜리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게. 겁은 많았고 돈은 없었고 겨우 몸을 누일 아주 작은 방 한 칸과 나란히 누울 친구가 있는 먼 곳으로 무작정 가는 패기만 있었던 어느 한 때. 나는 열일곱에 처음 한반도를 건너 타국에 가보았으나 진정한 해외여행이라 칭하는 것은 2014년 한겨울 바로 이 순간. 영어권이자 유럽권 나라를 처음 간, 그 때라고 한다.
이렇다 할 유명한 음식이 없는 나라이자 가뜩이나 비싼 유럽 물가 중 최고를 달리는 나라였다. 2014년 겨울, 파운드가 1800원쯤 했을 때였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오롯이 친구만 보고 달려간 곳. 그저 매력 있는 악센트를 발음하는 영어의 본고장이었던, 영국이었다. 그것도 하필 아주 진한 영국을 품은 런던 말이다.
졸업을 앞두고 무슨 돈이 있었겠어, 불편한 줄도 모르고 그 작은 스튜디오에서 서로 코 고는 소리를 듣고도 잘만 잤으니 그걸로 되었지 싶었다. 부모님 돈으로 그 먼 곳에서 마음 편히 공부하는 M이 마냥 부러웠지만 부러운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내 모습이 나 자신에게 더 부끄러워졌다. 어렸다. 어른이라고 부러워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지만, 그런 내가 스스로 부끄러웠으므로 그땐 어렸다고 말하고 싶다.
약 열흘 간 M과 한 공간에서 지내다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짧지만 긴 여행이었다. 다시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시간을 살게 된 우리는 휴대폰 문자 몇 마디로 일상을 공유하게 되었다. M은 허전하다는 말을 남겼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어딘지 휑하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너를 두고 온 것만 같아 내 마음까지도 괜히 먹먹해졌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내가 두고 온 것은 네가 아니라 결국,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그랬다.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으니 내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보고 또 보면서 감탄해 마지않으며 눈물마저 흘렸던 비 오는 런던의 거리와 사람들이었다고.
돈과 돈을 버는 내가 참 좋지만, 티켓만 끊고도 설레 미칠 것 같던 그때의 나는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부대끼며 누워서 오늘 뭐 했는지 조잘대던 우리는 이제 너무 말이 없어진 것만 같다. 겨울만 되면, 문득 이렇게 나란히 누워있던 우리가 더욱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