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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Nov 11. 2018

미신과 믿음 사이

널 좇는 발걸음과 내 마음을 믿기로 했다.

♥ 이번 글에는 사진이 없어요. 대신, 눈을 감고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짧았던 순간을. ♥


파리에 도착했다. 기다렸던 파리의 여름이었다. 감히 우습게만 알았던 그 살을 에던 추위가 떠올랐다. 강바람에 볼이 꽁꽁 얼어 카메라 앞에서도 어색한 웃음만 지어야 했던 그 겨울. 너무나도 극과 극의 파리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들떠있었다. 두 번째 발을 내디딘 샤를 드골 공항. 누군가 데리러 나왔던 캄캄한 도시가 아닌 오롯이 이정표에 의지하여 찾아가야만 하는 두 번째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주 짙은 녹음을 기대했고 그 처음, 날 반긴 것은 아주 뜨거운 지하철의 공기였다.

악명 높은 도시의 악명 높은 대중교통. 하필 그 정신없는 와중에 아끼던 팔찌가 끊어져 버렸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양식 진주가 몇 알 박힌, 중국 여행에서 산 예쁜 팔찌였다. 그래, 정확히 말하면 어쩌다 얻게 된 값을 모르는 흔한 선물이었다. 도무지 진짜가 있기는 한 것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만드는 중국이었고, 겨우 이 나라를 이해하고 젖어들 때쯤 떠나야 했던 곳에서 받은 유일의 액세서리였다.

귀걸이를 제외한 액세서리를 즐겨하지 않는 내가 이번 여행길을 위해 손목에 감아 온 것이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옷이 점점 짧아지다 못해 살이 옷보다 더 많이 드러나는 여름에는 가끔 반짝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엄마의 걱정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필 끊어진 것이 팔찌라니.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 실로 감아낸 소원 팔찌도 아닌 예쁜 진주알로 엮긴 팔찌. 하필 끊어지면 안 되는 것이 끊어져버렸다.

발걸음이 우리나라 사람만큼이나 빠른 파리지앵과 파리지엔느 사이, 퀴퀴한 어느 환승역 한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았다. 흩어진 진주 몇 알을 줍고 끊어진 줄을 더러운 줄도 모르고 바닥을 훑으며 쓸어 담았다. 여행의 시작이었다. 얼마큼 길었는지도 모르는 더운 지하철 안에서 막 벗어났을 때였다.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괜찮냐고 괜찮다고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눈물을 훔쳤을지도 모르겠다. 망가진 팔찌보다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만 같아서, 여행의 시작부터 꼬이게 된 것만 같아서. 재빨리 모은 팔찌의 잔해를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쓰라린 손목을 매만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래 아프기 싫은 탓이었다. 고작 이것으로 불안한 여행길을 걷기 싫은 탓이었다. 마음을 꼭 쥔 채 따라가야만 하는 다른 발자국이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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