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입니다.

부끄러운 나 자신에 대한 짧은 고찰

by 리아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어언 5년이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이 가슴 아픈 사건을 타국에서 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수많은 사건 사고 중 하나라고 너무도 가볍게 여기고, 그 마음은 잊은 채 그저 여행을 떠났다.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어쩔 수 없다'며 내버려둔 것이었다. 나라에 큰 슬픔이 생겼다고 해서 혹은 수많은 타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건이 생겼다고 해서 내 여행을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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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근한 간판들로 가득한 거리는 나의 시선을 확 끌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돈가스에 대한 기대는 충만했다.


오사카 내 유명한 전망대의 직원에게까지 물어가며 어렵사리 찾아간 작고 오래된 일본식 돈가스 집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행책을 공부하듯 독파하며 가고 싶은 맛집을 찾아다닐 때였다. 그 흔한 여행 초보였다. 기대에 부풀어 돈가스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가 티비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혀를 끌끌 차는 할머니의 모습에 나 역시 기대를 잠시 내려두고 티비를 봤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참사, 세월호 사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혹여나 내게 저 사고에 대해 묻지는 않을까. 작은 죄책감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소스는, 맛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그녀는 내게 돈가스를 내어주었고 나는 다시 돈가스에 시선을 빼앗겼다. 김이 나는 돈가스의 자태를 찍고 난 후 한 점 썰어 막 입에 넣으려 할 때였다.

칸코쿠진 데스까?

단어 정도만 알아듣고 어설프게나마 몇 마디 할 줄 아는 내 귀에 꽂힌, 칸코쿠진. 내 나라의 비극보다 내 눈 앞의 돈가스가 급선무인 나는 한국인이었다. 이어 손짓 발짓으로 티비를 가리키며 무어라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에서 나는 깊은 애도를 느꼈다. 칸코쿠진과 히토리 외에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어깨를 으쓱이는 것뿐이었다. 물론 아주 슬픈 눈을 하고 말이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간파한 주인 할머니는 또다시 씁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식사를 들라고 했다. 아마도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이제와 보니 양도 참으로 적었다. 물론 많았더라 해도 그것을 모두 욱여넣을 자신은 없었다. 참, 가격은 또 얼마나 비쌌던가. 일본 물가를 고려하고도 왠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돈가스는 질겼다.

역시나 여행 책에 소개된 맛집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질긴 돈가스를 기어코 씹어내는 내 자신에게 조금 화가 났다. 마침내 튀김 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을 때, 그때 비로소 내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깨달았다.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것이라곤 그저 웃으며 돈가스를 욱여넣는 것뿐이라는 사실.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한 손님의, 개인의 작은 불만조차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 나아가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보지 않는다는 사실. 아주 비겁하게도 나의 작은 일조차 해결하려 들지 않고 무난하게 지나가려는 내 모습에 아주 많이 화가 났다.


이후, 삼일 간의 여행은 달았으나 나는 끝내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아주 고요한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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