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챙겨 와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돈으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것, 살 수 없는 것, 빼앗을 수 없는 것.

by 리아

동남아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 짬을 내어 여행을 가기에는 동남아가 제격이다. 그리하여 인도네시아에 이어 내가 선택한 여행지는 비행기 편이 꽤 자주 있다는 베트남의 다낭이었다. 여느 동남아 국가들이 그렇듯 커피의 나라이자 또 아주 더운 나라였다. 이미 우리나라도 한 더위 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지만 감히 우리나라 더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변만 둘러 보아도 여름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것도 아주 뜨거운 어느 동남아의 한여름.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뙤약볕 아래에서 한참을 걸었다. 구글 지도를 한 번 쓱 훑은 후 무작정 걸은 호이안 올드타운에서 군데군데 밤 장사를 준비하는 지친 얼굴의 현지인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삶을 온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계산기부터 내미는 그들의 손에서 현실에 찌든 인생을 아주 조금 읽을 수 있었다. 마냥 순수한 현지인의 표정을 기대했던 나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어렵고 가난한 삶에서도 행복할 거라는 오만이었다. 삶은 똑같았다. 해외여행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말하던 나였는데. 입버릇처럼 말했으면서, 그들에게 내가 기대한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이 열심히 굴리는 자전거의 바퀴처럼, 그들의 인생도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다.


쇼핑을 위해 이곳에 온 사람 마냥 작은 것 하나를 사도 흥정을 멈추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 여행을 위한 것은 무엇이며 또한 이 여행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했다. 떠나기 전 나는, 동남아 국가의 장사치들을 상대하려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둥의 흔한 조언들을 연습했다. 물건 하나 사는 데에도 온 정신을 가격에 쏟아가며 정작 그 물건의 "본질"은 잊고 마는 꼴이라니. 원하는 가격을 얼추 맞춘 뒤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나오며 흡족해하는 나와 친구의 모습이라니.

세상에는 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 살 수 있는 것이 많지만 돈에 얽매여 살면 결국 놓치는 수많은 것들 또한 존재한다. 우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언제나 돈에 영혼을 파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어렵사리 낸 나의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결국에는 돈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물건값을 깎았으며 누구를 위한 선물을 샀는지도 모른 채 작은 백팩에 그것들을 욱여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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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쌀 수가 있을까, 하면서 구경한 여름 나라의 옷들. 그리고 마침내 내 몸에 걸쳐진 예쁜 원피스. 남은 게 있다면, 예쁜 원피스 한 장이 아닐까...?

돌아와서 짐을 풀 때마다 느낀다.

챙겨간 짐보다 때로 새로이 가져온 짐들이 많지만,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구를 생각하며 챙겨 넣은 것들이었을까. 정작 나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신마저도 영혼마저도 놓고 온 사람 마냥 귀국해서도 며칠을 비틀비틀 살아가고 있는 나. 사람들은 그것을 여독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많은 것을 챙겨 왔지만 결국 나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고 와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며칠을 살아내다 겨우 깨어났다. 사진을 보던 찰나 두고 온 것이 머릿속에 번뜩였다.

내가 매번 여행지에서 정성을 다해 가져오지 못한 것은 결국, 그리움이구나.

기념할 무언가를 혹은 추억을 나누기 위한 선물들을 잔뜩 쟁여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나 마음이 허한 이유는, 정작 그곳, 사람, 그 따뜻했던 모든 풍경에 대한 그리움을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움은 아주 적당한 삶의 온도를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공항을 오가는 길에는 늘, 복잡미묘한 감정이 한 웅쿰씩 뚝, 뚝, 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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