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지루했다. 일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지만 그런 일상에도 삶의 이유가 있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상태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여행하지 않는 시간을 더 잘 충전하는 시간으로 만들면서 기다려보겠다던 나는 없었다.
여행의 유통기한은, 대체 얼마 큼인 걸까.
꼭 여행 뒤의 후유증 같기도 했다. 억지로 여행을 종료한 채 귀국하는 비행기에 탄 사람 마냥 발끝이 무거웠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힘겹게 세상을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몸은 자꾸만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려고 하는데 땅 속 어딘가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떨어뜨리려 하고 있었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은 키가 크는 꿈이라던데. 그저 악몽이었다.
유럽 여행 중에는 꼭 성당을 간다. 기독교도 천주교도 아니지만 성당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평온. 일상에서도 필요한 그것이다.
상자를 열었다. 삐걱대면서라도 굴러가고 있는 일상에서 그 상자는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없었다. 인화된 수많은 사진 속에서 내가, 당신이, 그들이 웃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무표정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저분마저도 웃게 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그 정도로 많이 웃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어깨를 쥐며 언뜻 웃은 것 같기도 한데..?사진을 인화하고 나면 확실히 들여다보는 일이 잦았다. 그곳의 풍광이 가득 담긴 엽서를 구매하는 일은 필수였다. 나는 기억력이 꽤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기록과 수집이 습관인 탓이었다. 왜곡된 기억도 존재하겠지만 그 또한 그 나름대로 좋았다. 어차피 오롯이 나의 것이 분명했으니까. 누군가는 여행의 모든 과정과 느낌은 결코 다시 경험할 수 없다고 했지만, 웬걸,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장면들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티켓과 사진, 엽서나 마그네틱, 심지어는 식당에서 끄적이던 냅킨 몇 장과 함께, 나의 여행은 보물상자에 봉인되어 있었다. 세상의 끝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면, 자꾸만 열어보라며 나를 유혹하는 상자 말이다.
여행지에서 엽서를 사서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친구가 있었다. 그 나라 그 도시의 우체국 소인이 찍힌 엽서는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일상에 젖어 축축해질 때 즈음, 자신에게 배달이 된다고 했다. 그 엽서를 받을 때 받는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아주 오묘한 기분이란다. 나는 차마 부끄럽고 손발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어 한 번도 그러하지 못했다. 오로지 안부를 전하고 싶은, 그리운 누군가에게만 보내봤을 뿐이었다. 나 자신에게 사랑을 주기에는 이미 다른 사람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였을까. 나는 주섬주섬 챙겨둔 열차 티켓과 몇 개의 팸플릿, 형형색색의 또는 색이 바랜 엽서, 그런 것이라면 충분했다.
티켓은 때로 아주 좋은 피사체가 되기도 한다.그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우울한 일상에서의 내게 다시 자극을 주는, 나에게 쓰는 편지가 되어줄 테니까. 나는 언제든 그것을 꺼내어 보고, 결국 또 떠나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