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꿈을 꾸었다

내가 몰랐던 나의 꿈, 그 뒤에 숨겨진 나약함에 대하여.

by 리아

아주 원대하고 멋진 꿈을 꾸었다. 지중해 어디쯤을 지나며 뜨는 태양과 지는 석양을 보겠다는, 소박하지만 낭만적인 꿈.

물빛에 비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그것이 물 위에서 보는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반사판이 된 물결에 눈이 멀어도 좋겠다,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유럽 대륙으로 향할 때에는 비행기를 타야 하겠지만 유럽 내에서 이동할 때는 최대한 많은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미 그 혼잡하고 무섭다던 파리 북역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기차를 타기 위해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남들이 보기에, 동선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 그리고 뒤이어 이탈리아라니. 유럽 내에서는 비행기를 타는 편이 훨씬 저렴할 수도 또 쉬울 수도 있었지만, 기차에 이어 특별하게 내가 선택한 수단은 다름 아닌 배였다. 그 때만 해도 내 직업에 대해 넘쳐나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렇게 배를 타야만 하는 이유가 생겨났다.

리서치는 쉽지 않았다. 분명 배를 타고 바르셀로나에서 치비타베키아 항으로 가는 사람이 있었지만 많은 편은 아니었다. 주로 스위스를 들렀다가 이탈리아로 가곤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가장 어렵고 가장 일반적일 수 없는 방법이기에 이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시도에는 늘 즐거운 흥분이 솟아나지만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승선을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출항이 늦어지는 만큼 설렘도 차차 줄어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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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는 쇼핑백과 몸집만한 백팩을 메고 말도 안 듣는 바퀴가 달린 트렁크를 끌었다. 저 많은 창문 사이에 감히 겨울 지중해의 낭만을 꿈꾼 내가 있었지.


우여곡절.

정말이지 이 네 글자 외에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던 하루, 아니 이틀이었다. 하는 일에 걸맞게 아주 멋진 승선과 출항을 꿈꾸었건만. 어디인지도 모를 바다 위에 떠서 처량하게 토하던 그 스무 시간은 정말이지 지옥이었다. 파도가 아무리 세더라도 저렇게 큰 배를 뒤집어 놓겠냐며 씩씩하게 배에 오르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정말 악몽 그 자체였다.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이탈리아 아줌마는 인사를 나누고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뒤 조용히 책을 읽었고, 승선 몇 시간 만에 초라하다 못해 초췌해진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벌써 몇 번째 이 배를 탄다는 그녀의 말이, 어려 보이는데 혼자 여행하는 것이 대단하다는 그녀의 칭찬이, 머릿속에 들어오기도 전에 토하고 싶은 마음이 툭툭 튀어나왔다.

캄캄한 밤바다. 울렁거리는 내 속만큼이나 일렁이는 지중해의 거친 파도. 가슴으로 느낄 새도 없이 온몸으로 공포를 경험했다. 스무 시간 중 열다섯 시간을 자면서 견딘 나는 로마에 도착한 그다음 날까지도 속을 게워내며 여행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지중해의 일출과 일몰은커녕, 해가 뜨고 지기는 하는지 그 무엇도 모른 채,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거대하고 웅장한 신전의 흔적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로마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로마. 나의 여행지의 끝.


이 긴 여행이 끝날 무렵, 마지막 여행지만을 남기고 처음으로,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이탈리아 아줌마로부터의 메일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아주 오래 그녀를 기억할 것만 같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겁에 질려 보냈을 그 스무시간과 함께. 내가 몰랐던 나의 나약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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