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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Feb 24. 2018

당신 참, 블라디보스톡 같군요.

일년에 한번,

이라는 나와의 약속을 깨고 허한 맘을 달래기 위해 몸이 추운 곳을 다녀왔다.

여느 여행과 다른 게 있다면,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격상 낯선 곳에 가면 긴장했고 보다 더 치밀해졌으며 늘 경계했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곳만 쭉 적어놓은 채로 시간 단위의 계획 없이 낯선 러시아에 떨어졌다.

그래서였을까.

다 볼 수도 없었지만 나는 더 찬찬히 더 오래 마음에 담았다.

계획이 없으니 나는 새벽까지도 술을 먹고 온기를 나눌 수 있었겠지.
-
또 다른 하나는 카메라없이 다니기였다.

더 좋은 사진을, 내가 잘 나온 사진을 건지기 위해 수백장의 사진을 찍고 또 찍는,

말 그대로 인증샷을 위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물론, 요즘은 휴대폰 어플의 필터'빨'이 어미무시하기에.

어깨가 가벼워져서인지 사진 속 풍경은 한결 자연스러웠다.

사실 눈 오는 겨울의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은 예쁠 수 밖에.

겨울왕국처럼 참으로 동화같은 도시임이 틀림없다.
-
혼자가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주하는 사람마다 혼자냐고 묻는데

당당히 네, 하고 대답했다.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 오랜 시간 누군가와 함께하곤 하니까.

이번에는 이어폰도 없이 오래오래 걸었다.

작은 도시이기도 했지만 말없이 음악없이 걷는 시간이 좋았다.

오롯이 혼자였고 이곳에 취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다.

-

어쩌면 혹독한 추위 때문이었을지도요.

그리고 그 속에서 당신은 참, 블라디보스톡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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