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삶, 연결된 우리

by 최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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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은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은 작가는 아니었다. 어떤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공통점을 찾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고닉은 몇 마디 안에 나를 입 다물게 할 사람같았다. 나는 낯을 가리지만 묻는 질문에는 곧이곧대로 답하는 편이라 솔직함을 무기로 관계를 쌓는 편인데, 고닉은 질문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상대방의 질문을 받는 데 더 익숙한 사람같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그녀의 책 ‘짝 없는 여자와 도시’에서였다. 짝 없는 여자이며, 도시에 산다는 점 말고는 내가 그녀에게 마음을 열 만한 다른 공통점은 없었다. 그녀는 ‘내가 털어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우리 문화의 대단한 착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솔직함을 무기로 여겨왔던 나는 그 신랄함 앞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첫만남 이후 시간이 흘렀다. 그간 나는 여행의 기억과 문학적 감상을 엮은 에세이를 썼다. 매 에피소드마다 나의 일상과 연결할 만한 타인의 문장을 찾는 게 일이었다. 책장에 꽂혀 있던 그녀의 책,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매 순간 나를 유혹했다. 그 매력적인 제목은 비비언 고닉의 목소리가 나의 일상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글이 풀리지 않던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책을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새로이 읽혔다. 그날 이후, 몇 번 씩이고 같은 책을 새로 펼칠 때마다 문장들은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다시 읽기’를 시작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후론 내밀한 벗이 된 책들로 계속 돌아가고 또 돌아가곤 했다. 나를 저 멀리 다른 세계로 훌쩍 데리고 가주는 이야기의 쾌감만으로도 마냥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헤쳐나가고 있는 이 삶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어떤 의미를 끌어내야 할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p.12


그간 우리 사이에 충분한 시간이 쌓인 걸까. 그녀의 또 다른 책 ‘사나운 애착’의 첫장을 열었을 때, 나는 단숨에 그녀의 과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어쩌면 우리가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으리란 희망이 움텄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새로운 책, ‘끝나지 않은 일’이 내 앞에 다가왔다. 나는 내가 느낀 일련의 과정이 ‘다시 읽기’를 통한 연결과 다름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시 읽기’의 좋은 점은 그것이 과거 혹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오롯이 비추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 전부터 ‘다시 읽기’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십 대 때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필사 노트에 나를 움직인 문장들을 열심히 기록했다. 현실의 고민을 덜어주었던 문장도 있고, 친구의 위로처럼 따뜻했던 문장도 있었다. 답답한 새벽이면 그런 문장들을 거듭 읽으며 위안을 얻곤 했다. 그것이 내 방식의 ‘다시 읽기’였다.


맥락을 떠나 따로 떨어진 문장들은 사실, 다시 쓰기의 산물인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다시 읽기’와는 조금 어긋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삶’의 압력을 느끼기 위해 읽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이제는 비슷한 갈등 앞에서도 나는 전과 다르게 행동한다. ‘다시 읽기’를 통해 나의 성장을 확인한다. 내가 지금 헤쳐나가고 있는 이 삶은 지금이 아닌 다른 곳에 얽매여있지 않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의 움직임이다.


그때 비로소 깨달은 바, 주인공은 거의 언제나 남자였다. 그들이 헤치고 나아가는 삶의 행보는 내가 언감생심 꿈꿀 수 있는 삶과는 결정적인 단절이 있거니와 어느 한구석 닮은 데도 없는데, 독자로 살아온 일평생 나는 그 남자들과 나를 동일시해왔던 것이다. - p.21


그러나 나 또한 언젠가 고닉처럼 책 속의 거대한 ‘삶’이 나를 위한 교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던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우리 모두는 비비언 고닉이 말하는 바와 같이, 나와 어느 한구석 닮은 데도 없는 주인공들에 나를 투영하고 동일시한 적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 야심찬 인물들의 선택을 이정표 삼아 개척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그 이정표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아시안이 아니라 백인을, 소시민이 아니라 범인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전자에 해당한다는 것을 수없이 부딪히면서 거듭 확인했다. 그럴 때면 ‘다시 읽기’는 나에게 잔인하고 피하고 싶은 행위였다.


하지만 비비언 고닉은 알려준다. 이러한 연결의 어긋남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무수하게 분열된 자아 속에서 하나의 통합된 자아로 나아가는 과정 말이다.


이번 읽기에서 알게 된 건 이야기가 무엇이든, 문체가 어떠하든, 시대가 언제이든 문학작품의 중심 드라마는 늘 치명적으로 유독한 인간의 자아분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 위대한 문학은 통합된 실존이라는 업적이 아니라, 그 위업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각인된 분투의 기록이다. - p.26


삼십 대에 접어들고 나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어린 날의 고민은 사라지지 않고, 그 강도와 결만 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뛰어든 레이스가 장기전이라는 사실을 이제 막 깨달은 선수라고 해야할까. 항상 단거리 경주에 임하는 심정으로 체력 안배에 실패하고, 매 순간 죽을 힘을 다하던 이십 대. 대체 언제 끝나나 싶었던 레이스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그래프의 굴곡이 보인다. 삼십 이년 간의 분투의 기록이다. 비비언 고닉은 내 것의 두 배 반 쯤 되는 길이의 그래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아시안이든 백인이든, 소시민이든 범인이든 굴곡 빼고는 다를 것 없는 곡선들.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연결됨을 느낀다.


‘다시 읽기’라는 끝나지 않은 일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확장될 수 있는 임무다. 내 방식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이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통합된 자아가 아닌, 연결된 우리다. 자아는 결코 완벽하게 통합될 수 없을테지만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연결될 수 있다. 비비언 고닉과 나의 생각은 여전히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결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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