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by 최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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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아카시아 향이 흩어지는 계절이다. 지하철 역 두 정거장 거리를 걷기에는 낮은 벌써 더워졌지만, 해질녘을 목전에 둔 시간이라면 그래볼 만 하다.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40분을 구겨져 있어야 하는 버스 안보다는 백번 낫다. 그래서 나는 오늘 퇴근 길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과감히 보내버리고 종묘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의 이름은 서순라길.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 무리를 대여섯 번 정도 지나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매번 양보하기만 하고 양보받지는 못하는가’ 단순히 그들이 먼저 길을 양보하기 전에 내가 먼저 비켜난 탓일까? 모르는 사이에 나는 또 피해의식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두 발이 보인 것은.


"언니!"


도에 관심 없다고, 갈 길이 바쁘다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뻣뻣하게 고개를 든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10년 전 프랑스 파리의 셰어하우스에서 동거동락했던 언니였다.


불과 하루 전날 나는 친구와 술 한 잔 기울이며 같은 셰어하우스에 살았던 또 다른 룸메이트 동생 얘기를 꺼냈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방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나간 인연은 서랍 속 종이상자처럼 고이 모셔두었다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하고 떠올리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불가항력적인 힘이 그 종이상자를 내 발 앞에 꺼내 놓은 것이다.


이제 막 삼십대에 접어든 나는 인생이 수많은 단거리 경주의 연속이 아니라 장기 레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맘때 쯤 되면, 스무살 언저리에 만난 친구들은 기본 10년지기 이상이고, 그보다 더 어렸을 때 만난 친구들은 20년지기까지도 간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시간이 이렇게나 길어지면 관계의 그래프에 어느정도 굴곡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끊어내지 않고 두고 본다. 하강하던 관계의 곡선은 어느 날 들여다보면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언니와 나의 그래프로 말할 것 같으면, 하강도 상승도 없이 일직선으로 죽 그어진, 멈춘 것도 끊어진 것도 아닌 모습이었다. 우리가 연락하지 않고 지낸지는 7년 가까이 되어갔지만 우리는 SNS로 마지막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카시아만큼이나 향긋한 차를 들이키며 머금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한시간 반 뒤에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서로 망설이고 있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끊어지지 않은 이상 다시 연결되는 일은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운명은 우스울만큼 허무한 방법으로 알려주었다. 나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오랜 친구를 되찾았다. 아니, 손을 다시 잡았다. 마치 어제도 만났던 사이 같았다. 우리는 함께 지냈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고민을 서로 스스럼 없이 털어놓았다. 대화는 막힘없이 이어졌다.


이십 대 초 중반의 여자 여섯 명이 타국에서 아파트 하나를 나눠 쓰던 시절이었다. 서로 언짢을 때도 있었고, 위로가 되어줄 때도 있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하다보니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밀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순간도 있었다. 그건 지금 내 앞에 놓인 관계 곡선을 다루기 위한 예행 연습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슬슬 오랜 친구의 민낯을 보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삼십 대의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다. 어렸을 때처럼 나와 다르다는 이유 따위로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연결된 관계는 점차 나의 일부가 되어간다.


고민을 다시 고민해본다. 왜 나는 매번 양보하기만 하고 양보받지는 못하는가.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로 한다. 상대방이라고 해서 내 민낯이 실망스러웠던 적 없었을까. 맞은편에서 오만상을 쓰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나에게 기꺼이 양보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거다. 관계에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다.


낭만적 우연으로 다시 연결된 우리는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위치까지 곡선을 올리거나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볼 만하다. 오래된 종이상자를 잊은 채 방 한 구석에 구겨져 있을 내 모습을 생각하니, 아무리 피곤한 관계일지라도 망설이지 않고 부딪히는 편이 인간적일 것 같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해 본다.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내면서 민낯을 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서글픈 일이라고.


다시 만난 오랜 친구는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가만히 듣다가 별 것 아닌 말들로 격려해 주었다. 그 순간 오늘 하루가 충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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