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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루 May 17. 2024

단합대회라 쓰고 갈등대회라 읽는다

알파세대 중1 탐구일지

학교는 아이들을 파악해야 하는 학기 초, 성적을 마감해야 하는 학기말이 항상 바쁘다.

그 바쁜 와중에 선생님들을 멘붕 시킨 갑작스러운

 지령(?)이 내려왔다.



활동은 애들이 하는데 교사가 바쁜 신기한 활동들이 있다.  


풀 가위 테이프 챙기고,
꾸미기 재료 챙겨야 하고,
애들이 뽑아달라는 사진 출력하고,
소외되는 애들 없는지 챙기고,
싸움 말리고.. 고난이 예상됐다.


이미 한차례 학기 초 단체 사진 찍기 대회에서 보기 좋게 꼴찌를 한 우리 반이었기에 이번에도 심드렁할 줄 알았다.

(단체사진 찍기 대회에서 열의가 있었던 건 나뿐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웬걸, 그때는 서로 안 친해서 그랬는지

이번 단합에는 사활을 걸고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21개의 아이디어가 나오고 추리고 추려서 결국

목소리 큰 남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조폭 콘셉트로 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다.




소품으로 오함마부터 각목, 손도끼 등등 누아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심사에서 떨어질 게 분명한 콘셉이었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난 그저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런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되겠지.

아니나 다를까, 똘똘한 한 학생이 의견을 냈다.

"우리가 조폭처럼 보이는 게 단합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 차라리 다른 거 하는 거 어때?"



그거지~~~역시 맞는 길을 잘 찾아갈 줄 알았다.
설득이 된 아이들은 다른 아이디어를 냈고 결과적으로는 훨씬 훨씬 좋은 결과를 내었다.

단체 사진을 검색해 보니 여럿이 하나의 모양을 만드는 사진들이 많이 나와서 학생들이 어떤 포즈를 취하면 좋을지 일일이 포즈를 취해보았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영상을 찍었는데

문득, 그걸 큐알 코드로 만들어서 첨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아이디어를 말하니 좋다 하여 영상도 첨부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단합대회는 모두가 으쌰 으쌰 하여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인데, 현실은... 갈등 그 자체였다.

전지 한 장을 꾸며야 하는데 서로 감정이 상해 싸움이 났다. 욕설이 난무하고 심지어 반을 이탈하는 학생이 생겼다.


장난치는 애들은 빠져라, 의견 냈는데 무시했잖냐 너희들끼리 다 해먹어라..

화해를 하고 다시 잘해보라고 하기엔 감정이 서로 격앙되어 있길래 차선으로 해결책을 줬다.


아이디어 비슷한 세 그룹으로 나눠서 세 개 만들어라. 투표로 제일 잘한 거 제출하자! 나머지는 반에 붙여놓자!

그래서 결과는..!!




무려 장려상을 받았다.
갈등을 겪고 받은 상이라 감개무량하다.

갈등, 분노가 난무한 단합대회였지만 분명 의미가 있는 활동이었다.

1. 학교는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서로 의견이 같을 수 없음을 배우고 대다수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방법을 배운다.

2. 질서 정연하고 획일화된 포즈만이 꼭 단합의 정답은 아니다. 

활발한 학생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카메라 앞에 서기 싫어하는 친구는 사진촬영과 영상 편집을,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는 꾸미기를 하면 된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때로는 결과가 과정을 미화시킬 때도 있다.


상 받았다고 칭찬하니 되레 화를 낸다.
우리가 제일 단합 잘했는데 왜 장려냐며!!
따지는 학생들을 보니, 귀여워서 그저 웃음만 나온다.


역시 단합은 화낼 때 제일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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