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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루 May 13. 2024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들

14살의 행복


중학생들은 언제 행복할까?


수업 시간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아이들과 이야기했다.

각자 행복한 순간을 10가지 이상 써보라고 했는데

쓰다 보니 신이 났는지 20개씩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두 반을 수업했으니 대략 500개의 답변을 본 셈이다. 공통적으로 나온 답변들이 많았다.


- 학교 쉬는 날이라 안 갈 때  

- 학원 안 갈 때, 학원 숙제 다 했을 때

- 가족들이랑 여행 갈 때

- 시험 100점 맞았을 때

- 계좌에 용돈 들어올 때, 용돈 받을 때

-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서 뒹굴거릴 때

- 친구들이랑 게임할 때

- 친구들이랑 수다 떨 때

- 마라탕 먹을 때, 맛있는 음식 먹을 때

- 별 거 안 했는데 선생님에게 칭찬받을 때

- 좋아하는 친구에게 연락 올 때

- 남자친구 만날 때

- 금요일 저녁

-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학교 올 때

- 좋아하는 수업을 들을 때

- 좋아하는 연예인 직캠 볼 때


일상 속 행복을 깨알같이 잘 찾아내서 웃기면서 공감이 되는 답변도 있었다.


- 핸드폰 떨어졌는데 안 깨졌을 때

- 고백했는데 알고 보니 쌍방이었을 때

- 야구 역전승했을 때

- 새 축구화 택배 박스 열었을 때

- 비 오는 날 비 맞으면서 친구들과 축구할 때



아이들의 답변을 읽어보면서 교실을 도는데

발걸음을 멈추게 한 글이 있었다.


"내가 도움이 될 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행복하다고 쓴 학생의 얼굴을 봤다. 3월에만 10번 지각을 한 학생이다.


긴장해서 아무도 지각을 안 하는 3월,

지각도 하고, 준비물도 안 가지고 오고,

내야 할 숙제도 제때 못 내고,

친구와도 자주 투닥거려

학부모 상담까지 여러 번 진행한 학생이었다.


3월에 이 학생은 나에게 와서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자신에게 욕을 한다고 말을 했었다.


왜 욕을 했나 장애를 가진 친구를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학생이 먼저 말을 걸며 귀찮게 했다고 한다. 두 학생을 따로 불러 지도를 한 후, 감정이 상했으니 당분간은 서로 말 걸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둘이 또 싸웠다.  먼저 말을 걸었다고 한다.

말만 안 걸어도 안 싸울 텐데 왜 자꾸 그 친구에게 말을 거냐고 물어봤다.


"제가 잔소리하지 않으면 쟤가 학원에 안 와요."


사이좋은 사이도 아니고 맨날 투닥거리면서 그런 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너는 욕을 먹으면서도 챙겨주고 싶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


"친구니까요."


답답한 마음에 아이에게 쏟아냈다.

친구를 챙겨주는 마음은 예쁘다만,

너의 할 일부터 잘하는 게 우선이다.

네 할 일도 못하면서 남을 챙기는 건 오지랖이다.

특히 너에게 욕하는 사람을 굳이 챙길 필요는 없다.

앞으로는 챙겨주지 마라.



그 아이는 대답 없이 내 눈을 바라봤다.

이런 말을 하는 어른은 처음이라는 듯이.


"왜?? 너무 매정하니?"


"조금은요."


그때였다.

남들과 다른 이 아이의 매력 발견한 순간이.

이해력과 행동은 느리지만 심성이 고운 아이였다.


빨리빨리 적응하고, 행동해야 하는 조직에서는

매일 지적을 당하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추구할 줄 아는 아이.


남을 도울 때 행복한 아이.

욕을 먹어도 남을 돕고 싶은 아이.


느리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왠지 부정적이다.

뒤처지는 것 같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들이댔던 속도라는 기준을 버리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낄 때

행복해하는 아이가 보였다.

기꺼이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심성이 고운 아이가 보였다.


우리는 종종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잊고

같은 기준으로 행복을 재단하고

그 기준에 맞추어 나와 타인 평가한다.


학생의 작품을 보고

남의 행복에 오지랖 넓게 말을 얹었던

나의 행동이 부끄러웠다.


이 학생처럼 본인의 행복의 기준을 정확하게 아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단단한 사람은 남과 비교하는 일도,

남의 평가에 속상할 일도 없다.


학생들은 늘 나를 성장시킨다.

내가 이 직업을 하며 행복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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