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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향 Apr 18. 2022

할 말이 없어서

글을 더디게 쓰는 이유

핸드폰에 설치한 브런치 앱에서 알람이 왔다.

작가님(=나)를 부지런히, 그래도 애타게 찾는 메시지다. 중앙 관리자가 이 플랫폼 설계 초기부터 계획하고 만들어 놓은 자동 메시지일 텐데도 나는 괜히 끊어놓고 안 나가는 헬스장 코치님 문자 보듯이 그 메시지를 대하게 된다. 대충 미리보기로 무슨 내용인지 보고 미루다 미루다 읽고 쏜살같이 지운다.


나는 요새 할 말이 없다.

일상에서 할 말은 일기장에다가 쓰고 있고,

때와 장소에 맞게 대화를 해 줄 상대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면 회사, 부캐면 부캐, 동네 친구까지... 순간에 필요한 대화의 상대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쉽게 얻는 사람들은 아니다. 해외에서 처음 하는 일에, 나와 근본적으로 안 맞는 회사 사람들, 끼리끼리의 그들이 만들어내는 그 에너르기 파(!), 그리고 마음에 사무치게 그리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2020년부터 1.5년 간 이 모든 것들은 독일의 장기간 락다운으로 나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었다. 마음 터 놓고 기댈 곳 없는 그리움은 참 힘이 세더라.


그 터널을 지나 나는 부캐를 위한 국제 지도자 과정을 다 마쳤다. 공황장애 치료도 마무리가 되었다.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이 거의 비슷한 시점에서 일어났다. 내 회사생활을 정말 괴롭게하던, 남을 이용해먹기만 하는 사람이 한 부서에 2명이었다가 이제는 한 명으로 줄어든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진짜로 할 말이 없는 이유는,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항상 내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바로 나다. 나에게 해주고픈 말들을 스스로 귀담아듣지 않아 생긴 마음의 매듭들이 하나둘씩 풀어지고 펴지는 경험을 몇 번 하고서야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싶어 하는, 그러기 위해 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다. 항상 완성형이지는 못하지만, 나는 기꺼이 수고스럽게 나를 위해 굿 리쓰너가 되는 길에 들어와 있다.


진짜 정말로 깊은 내 마음의 말은, 어차피 아무리 나라고해도 들어줄 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내 존재 자체에게서 난 질문일텐데, 지금 이 순간의 생을 살고 있는 나는 그 삶을 멀리 떨어져서 보아내는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나도 차마 들어줄 수가 없는 그 대화는 누구랑할까. 아주 개인적인 영역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내 삶에는 나를 이끌어주시는 나의 신이 계신다. 나는 그와 그 대화를 나눈다.


홍해를 가르시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그 신은, 맹목적인 믿음 없이도 삶이 어떻게 사랑으로 이루어지는지, 희망이 왜 생겨나는지, 대화 속에서 알게 해 주신다.


앞으로 나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베프와의 대화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내가 사람으로도, 사랑으로도 기꺼이 함께하고픈 베프를 만나고픈 마음이 커졌다. 아직 못 만났기 때문에 약간 판타지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다 ㅎ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또 다른 나와의 대화를 기대하며, 오늘도 나와의 대화를 이어간다.


결론은... 차마 말하지 못해서 쏟아내듯 썼던 글로 할 말은 없다는 것. 이제는 내 삶이 나에게 항상 말을 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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