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을 자각한다는 것

나를 가장 가까이서 버텨준 나의 몸에게 감사하며

by 이향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조금 예민할 뿐...


키 171cm, 몸무게 61-2kg(여름에는 58kg), 하체는 튼튼한 편이고 골반이 넓고 팔다리는 길며 상체가 마른 유형. 내 몸의 외형에 대한 요약이다. 딱히 건강한 체질은 아니지만 신체의 변화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몸 관리는 잘하는 편이다. 신체의 변화에 예민하니 스트레스받는 상황에는 몸에서 가장 먼저 반응이 온다. 최근 가장 가깝게 어울리기 꺼려하는 사람과 직장에서 시간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내게 되었는데, 반나절이 지나니 갑자기 편두통이 와서 곤혹을 치렀다. 약 기운으로 버티다가 집에 돌아와 지끈한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다 보니 이렇게나 예민한 내가 문득 웃겨서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이토록 예민하니 영 사는 게 술렁술렁 굴러가지는 않는다. 동시에 그 불편함이 나에게 또 다른 명쾌함을 준다. 나에게 맞지 않는 상황이나 환경에서 내 마음이 브레이크를 딱 걸면, 몸이 '끼익' 하고 급정거를 바로 해 준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내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것을 몸이 알려주고, 그것들에 나는 더욱더 귀 기울이면서 갈수록 나는 깍쟁이가 되어간다. 나에게 친절하고도 깐깐한 깍쟁이.


무너뜨리고, 또다시 세우고


나는 몸이 완전히 무너진 경험이 있다. 원래 감수성이 풍부하게 태어난 데다가, 아직은 그 감정의 고삐를 꽉 잡고 자신을 길들여내지 못했던 사춘기를 홀로 독일 깡촌에서 살아냈고, 대학도 입학하기 전에 마치 온 세상을 위해 살 것처럼 난민 단체에서 난민들과 활동하며 이상주의자의 극치를 살아보았다. 허공에 뜬 발을 스스로 묶어내기 위해 한국 사회에 다시 자리 잡아보려 뒤늦게 시작한 수능 공부와 또 다른 대학 입학시험은 나를 얼마나 초조하게 하던지. 매일매일이 누군가 미친 듯이 나를 쫓아오는 환경 속에 내 눈 앞에 놓인 닫힌 문을 부수고, 발로 차고, 두들겨서 열어나가는 삶이었다. 대단한 사람처럼 우쭐대는 것 같아 민망스럽지만,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볼 때에 나는 항상 나를 칭찬할 수밖에 없다. 그 무지와 공허와 압박에서 스스로 터져버리지 않고 어쨌든 앞만 보고 달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격려를 나에게 뿌린다. 그리고 나는 결국에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암에 걸렸다. 그 정도의 스트레스를 살았다면 사실 그 병은 애잔한 불행이 아니라 과학적인 결말에 가깝다.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고, 빠진 머리를 밀었다. 몸에 남은 세포는 다 죽인 듯 다시 세팅된 나의 몸을 가지고 나는 처음부터 시작했다. 밥을 먹는 것,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건 못한다고 말하는 법까지 나는 어린 나이에 맞게 살아보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받으려고 작정한 듯 정신적 퇴행을 몸의 무너짐과 함께 목격했다. 그렇게 7세의 마음을 한 20대 어린이의 생활을 2년 정도 하고서야 스물셋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고, 우연히 자취방 근처에서 알게 된 요가원에 들어가게 되어 치유의 여정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이 그저 조금 가벼워지는 것의 외적인 효과만 인상적이었던 요가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니 내 마음을 돌아보고 챙길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


내가 나는 내 새로운 삶이 요가를 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본다. 요가 자체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온전히 나만을 위해 행동한 경험, 그것을 꾸준히 진행한 끈기, 그리고 변화를 보게 된 성공의 경험. 삶이 새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나는 모두 요가를 통해 겪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몸을 살리는 필수 행동으로 요가가 자리매김했다. 다소 놀라운 사실은 몸을 수련하는 지극히 평범한 나의 행위가 내 삶에 특별함을 준다는 사실이다. 내 자신에게 폭력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내가 쫓아오던 인생에서의 특별함, 그건 사실 지극히 단조로운 월화수목금토일에 있다는 것을 나는 요기(Yogi)가 되고 나서 배웠다. 내 삶에서 솟아나는 사랑과 온전한 나다움은 그것이 아주 희미하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항상 큰 특별함으로 내 인생에서 기능하고 있다.


나를 위해, 나를 이겨내고, 나를 데리고 가는 몸의 길


유일한 자기만의 길을 가는 특별함과 짜릿함이 사실은 현실의 바닥에 깊게 뿌리 박힌 내 발 뒤꿈치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내가 강조하고 싶은 몸에 대한 자각을 통해 내가 배운 삶에 대한 인식의 방식이다. 이 표현은 말 그대로 땅에 발을 딛고 요가 수련이나 다른 몸을 움직여내는 체육을 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말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이상보다 훨씬 앞서서 우리를 압도하는 현실에의 발 묶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몸에서 벗어나 정신만 데리고 우리의 무릉도원으로 도망갈 수 없듯이 우리가 속한 일상, 사회, 관계, 그리고 생각보다 내 기대를 못 따라오는 나의 모든 현실이 모두 나의 묶임이다. 그 속박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자유는 그 두 발 위에 뻗어나가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과 정서, 그리고 삶에의 애정밖에 없다. 나는 이 자유로움을 요가에서 하는 호흡에 자주 빗대어 생각한다. 하나의 자세를 유지하며 유일하게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요소인 호흡을 통해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아주 조금 더 그 딱딱한 몸을 풀어낸다. 깊은 호흡과 호흡을 빌미로 더 길게 뻗어내는 몸과 동작의 깊어짐은 모두 내 몸을 향한 내 바람과 애정으로 끝에 가서는 화합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준다. 굳이 의미를 엮어내는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땅에 발 붙인 우리의 현실 일상과 그 와중에서도 최선으로 자유롭고 거리낌 없는 사고와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의 뭉친 현실을 풀어내는 호흡이라고 본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요가의 정의이고, 내 삶이 가지는 애정의 근간이다. 그리고 이 글은 요가 홍보글이 아니다. 나는 아직 요가를 설명할 만큼의 인간이 못 되는 바,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해석임을 양해해 주시길


우리가 오프라인에서도 자유롭기를


나는 지금 휴가 중이다. 밀려드는 일과 책임과 혐오와 실증을 참아내다가 터지기 직전에 감행한 4박 5일의 휴가는 ‘요가 리트릿’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 유럽 땅의 시골 구석에 들어와 외국인은커녕 사람도 없는 곳에서 요가 선생과 단 둘이서 아침에 일어나 요가하고, 책 읽고, 명상하고, 혼자 또 요가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7개월째 락다운을 겪으며 내 몸이 받은 타격과 새로운 나이대에 맞는 식이, 몸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계기도 있었다. 언제 어디서 봐도 나는 항상 초보 수련자이다.

자신의 몸의 움직임과 변화를 인지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단계라고 감히 확신한다. 정신의 끈과 몸의 끈을 함께 붙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이었으면 행복하겠다. 우리는 사실 자유함에 있어서는 더더욱 빠르게, 광범위하게 진화하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가상세계의 기술은 이제 그것을 가상(Virtual)이라고 부르기도 갸우뚱할 만큼 우리 살의 현실세계(Reality)를구성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가장 근원적이고 가까운 우리의 현실, 이 껍데기인 몸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삶에서 내 몸에 할애하는 시간이 충분하기를, 그 기회를 내가 만들어내는 엄격함이 나에게 지속되기를, 그리고 그것이 가능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내가 잊지 않고 결국에는 몸과 마음을 풀어내는 공간을 가꾸고 공유할 수 있는 할머니로 늙어가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지랄 맞음’을 받아 준 몸아, 참으로 고마워(특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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