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재판만 가능하다
미국 드라마나 법정영화를 보면 항상 배심원이 등장합니다. 민사재판이건 형사재판이건 상관 없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배심원제를 아직 채택하지 않고 있고, 형사재판에 대해서만 '국민참여재판'이라는 형식으로 일부도입되어 있을 뿐입니다.
미국드라마를 보면 변호사가 열띤 변론을 펼치고, 배심원을 향해 호소하는 장면을 익숙하게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배심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배심재판에 대한 스토리구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배경이 미국이 아닌 이상 한국의 법제를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배심재판에 대한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주의하셔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을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간략히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우선, 원칙적으로 우리나라는 '형사재판'에 대해서만 배심원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 약칭: 국민참여재판법)"에서 배심제 유사 제도를 규정하고 있고 매우 자세하게 내용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심화 리서치를 하시려면 법률과 그에 딸린 규칙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참여재판법 제2조를 볼까요.
국민참여재판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배심원"이란 이 법에 따라 형사재판에 참여하도록 선정된 사람을 말한다.
2. "국민참여재판"이란 배심원이 참여하는 형사재판을 말한다.
아예 "배심원"과 배심원이 참여하는 재판인 "국민참여재판"을 '형사재판'에 한정해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곧, 민사재판에 대해서는 배심원이 참여하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애초에 국민참여재판법의 풀네임도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 약칭: 국민참여재판법)이라고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종종 '손해배상'사건(손해배상사건은 민사사건입니다)에 대한 법정드라마가 등장하는데, 그 경우에도 배심원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률이 변경되지 않는 이상 그런 스토리를 애초에 짤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면 국민참여재판을 한다 치고, 법정 모양은 어떻게 되냐면 이 역시도 법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재판의 법정 모양에 대해서는 다른 글,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법정구조부터 다르다'를 참고하시길)
국민참여재판법
제39조(소송관계인의 좌석) ① 공판정은 판사·배심원·예비배심원·검사·변호인이 출석하여 개정한다.
② 검사와 피고인 및 변호인은 대등하게 마주 보고 위치한다. 다만, 피고인신문을 하는 때에는 피고인은 증인석에 위치한다.
③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은 재판장과 검사·피고인 및 변호인의 사이 왼쪽에 위치한다.
④ 증인석은 재판장과 검사·피고인 및 변호인의 사이 오른쪽에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을 마주 보고 위치한다.
기본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은 합의부 관할사건(판사가 3명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담당하는 사건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판사 3명이 방청석과 마주보고 앉고, 검사와 변호인 및 피고인(국민참여재판도 변호사가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재판입니다.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없으면 법원이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합니다. 다른 변호사가 등장해야 하는 재판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글, '변호사가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재판장면'참조하시길)이 마주 보고, 검사의 옆쪽에 배심원들이 앉게 되는 모양새입니다.
배심원은 원칙적으로는 만 20세 이상이 되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선정되는데, 다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피성년후견인이나 피한정후견인(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으로서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후견인이 선정된 사람을 말합니다)이거나,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이 안되었다던지, 범죄를 저지른 뒤 금고이상의 실형(징역)집행이 종료되거나 면제된 이후에 5년이 아직 지나지 않은 사람, 금고 이상의 실형(징역)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기간이 완료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예를들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이면, 형사재판이 끝나고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기간중에 있는 사람, 법원의 판결로 자격상실 또는 자격정지된 사람은 배심원이 될 수 없습니다(국민참여재판법 제17조).
쉽게 말하면, 배심원 중에 절박한 사람을 넣고 싶다고 하여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을 집어넣거나, 판단력이 다소 결여된 사람을 넣고 싶다고 피성년후견인을 등장시킬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집행유예기간에 있는 범죄자도 배심원이 될 수 없습니다(집행유예를 무죄와 마찬가지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참고로 집행유예 기간에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으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고, 바로 실형선고가 납니다. )
또, 직업적으로 배심원이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지방의회의원, 입법부·사법부·행정부·헌법재판소·중앙선거관리위원회·감사원의 정무직 공무원, 법관·검사, 변호사·법무사, 법원·검찰 공무원, 경찰·교정·보호관찰 공무원, 군인·군무원·소방공무원 또는 「예비군법」에 따라 동원되거나 교육훈련의무를 이행 중인 예비군은 배심원으로 선정될 수 없습니다(국민참여재판법 제18조).
그러니까 스토리의 재미를 위해서 변호사가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한다든지, 경찰이 배심원이 된다든지,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배심원으로 참여한다든지 그런 일은 발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피해자나 피고인 또는 피해자의 친족이나 이러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 피고인 또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사건에 관한 증인·감정인·피해자의 대리인, 사건에 관한 피고인의 대리인·변호인·보조인, 사건에 관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행한 사람, 사건에 관하여 전심 재판 또는 그 기초가 되는 조사·심리에 관여한 사람 등도 배심원이 될 수 없습니다(국민참여재판법 제19조).
사건의 피해자나 피고인과 관련된 사람, 사건을 수사하는 등으로 관여한 사람, 재판과 관련해서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배심원이 된다면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음모를 넣고 싶다면 이와 관련한 내용을 숨기는 것도 의미가 있을지도..
배심원의 수도 궁금하실텐데,
국민참여재판법
제13조(배심원의 수) ① 법정형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대상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는 9인의 배심원이 참여하고, 그 외의 대상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는 7인의 배심원이 참여한다. 다만, 법원은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판준비절차에서 공소사실의 주요내용을 인정한 때에는 5인의 배심원이 참여하게 할 수 있다.
② 법원은 사건의 내용에 비추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고 검사·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결정으로 배심원의 수를 7인과 9인 중에서 제1항과 달리 정할 수 있다.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가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이면, 예를들어 피고인이 내란목적살인죄(형법 제88조(내란목적의 살인)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를 저지른 경우에 국민참여재판을 받겠다고 하면, 배심원은 9인이 됩니다. 그 외의 사건에서는 7인의 배심원이 참여합니다. 사실, 법정형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대상사건은 매우 적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배심원이 7명이구나 라고 생각하셔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고, 검사,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동의할 경우에 법원이 결정을 하여 배심원 수를 7인 또는 9인으로 다르게 정할 수 있고, 피고인 및 변호인이 공판준비절차에서 범죄혐의의 주요 부분을 인정해서 사실관계가 단순해지는 경우에는 배심원을 5인으로 할 수 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은 아무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나름 조건이 있습니다.
일단, 벌금사건에 대해서는 할 수가 없고 적어도 법정형이 징역이나 금고 1년이상의 범죄로 기소가 되어야만 가능하고, 국민참여재판을 할 의사를 표현하는 내용의 서면을 법원에 제출해야합니다.
한편, 징역 1년 이상이 법정형인 범죄들 중에서도 해당이 안되는 범죄들도 있는데, "특수"가 붙은 범죄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해당이 안됩니다. 특수절도, 특수상해, 2명이상이 공동으로 저지른 범죄 중에서 존속폭행, 체포, 감금, 강요, 존속협박 등 이런 죄들은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뺑소니(도주차량죄), 상습절도, 절도범죄로 3번 이상 처벌 받았던 사람도 국민참여재판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제한들이 존재하는데, 국민참여재판을 주제로 시나리오를 쓰실 계획이라면 내가 쓴 스토리가 해당이 되는지 안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국민참여재판법 제5조 제1항 제1호).
또, 법원은 검사가 공소장을 제출한 이후부터 공판준비기일(본격적으로 배심원이 재판에 참여하기 전에 증거와 쟁점정리를 위해서 미리 열리는 기일) 다음날까지 배심원·예비배심원·배심원후보자 또는 그 친족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의 우려가 있어서 출석의 어려움이 있거나 이 법에 따른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지 못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나, 공범 관계에 있는 피고인들 중 일부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하여 국민참여재판의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성폭력범죄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일반적으로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부모)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거나, 법원이 보기에 국민참여재판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경우에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국민참여재판법 제9조).
마지막으로,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들은 유무죄에 대해 평결을 합니다. 만장일치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만장일치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평결을 하기 전에 심리에 관여한(재판을 진행한) 판사의 의견을 들은 뒤 다수결의 방법으로 평결을 하게 됩니다. 평결이 유죄로 나면, 배심원은 심리에 관여한 판사와 함께 양형(징역 몇 년으로 할건지 등)에 대해 토의하고 그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게 됩니다.
재밌는 것은, 우리나라의 배심원 평결은 법원을 구속하지 않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판사는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결론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재판장은 판결선고할 때 피고인에게 배심원의 평결결과를 알려주어야 하고, 재판장의 판단과 배심원의 평결결과가 다를 경우 피고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여야 합니다(국민참여재판법 제46조, 제48조).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배심원의 평결과 재판장의 판단이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양자의 결론이 다르게 날 수도 있다는 점은 극적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925000326&md=20140928004530_BL
저런 많은 제한들을 다 지키면 스토리가 무슨 재미냐 싶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법의 한계 내에서도 설명해드린 많은 배제사유들의 틈 사이로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셨으리라 기대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는 미드처럼 재판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양자는 다르므로 우리 특유의 제도에 대한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