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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Feb 26. 2018

소장은 고소장의 줄임말이 아니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의 각 시작점

의외로 '소장'을 '고소장'의 준말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을 구분하지 않는 분들도 있고, 지나치게 법원이나 수사기관을 신뢰하는 분들도 있고 변호사면 불법적인 것들까지 모두 다 알아서 해결사처럼 뭔가 해치워줄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판사들, 검사들, 변호사들은 각자의 업무범위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이지 만능은 아닙니다. 분명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조금은 더 현실적인 판사, 검사, 변호사가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가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범죄드라마 하면 보통 형사재판만을 생각하기 쉽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범죄를 소재로 하면 검사가 나오고, 판사가 나오고, 열혈 변호사가 나오고, 피해자가 나오고, 재판에서 증인이 등장하고 매번 구성이 비슷비슷해보이는 경향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범죄의 종류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더라도 피해자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은 채로 그저 정의구현으로만 마무리되는 인상이 찝찝할 수가 있습니다.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와 검사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점도 좀 아쉽죠)


민사재판의 경우에는 손해를 배상받는 것이 어쩌면 핵심!이기 때문에, 어떤 가해행위로 손해를 보고 피해를 받은 사람이 손해배상을 받음으로서 상대방에게 재정적으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면 보는 시청자/관객(사실은 변호사인 저)은 매우 기쁠 것 같습니다 ㅎㅎㅎ (피해자와 조력자이자 대리인인 변호사가 사건이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구분하지 않거나 그 매커니즘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의뢰인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알게 됩니다. '소장을 넣었는데' 라고 말씀을 하셔서 민사소송도 제기하셨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듣다보면 '소장'을 '고소장'의 준말로 사용하고 계신다던가 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근데 고소장과 소장은 진짜 하늘과 땅보다도 먼 사이입니다ㅠ.


*유사하게 '피고인'과 '피고'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 '민사소송에는 '피고인'이 없다'를 참고


소송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일단 크게는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정소송, 가사소송은 기본적으로 민사소송을 기본으로 운영된다고 보시면 될 것인데, 일단 기본적으로 원고와 피고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형사소송은 원고와 피고라는 대등한 당사자 간의 재판이라기 보다는 피고인과 검사, 검사의 공소제기가 타당한지를 판단하는 법원 3자간의 재판이라고 보는 게 좀 더 이해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그 3자 사이에 최근들어서는 '피해자'의 지위를 강화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 위의 소송 설계의 차이는 법정구조의 차이로까지 이어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글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법정구조부터 다르다'를 참조


쉽게 예를 들면,

A라는 사람이 B를 때렸습니다. 그래서 B가 좀 크게 다쳤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사건은 두 방향으로 진행될 수가 있습니다. 형사와 민사.


우선 B는 A에 대해서 형사적으로 수사기관(경찰 또는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함으로써 수사를 의뢰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해당 사람을 수사해서 처벌해달라고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고소'라고 하고(형사소송법 제223조),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생각될 때 수사기관에 처벌해달라고 의사표시를 할 때는 '고발'이라고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34조).


그러니까 피해자가 하는 고발은 '고소'라고 하고, 그 외의 사람이 할 때는 '고발'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한다고 해서 곧바로 형사재판이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B가 고소장을 제출하면 수사기간은 먼저 B를 참고인으로서 조사를 하고,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한 뒤 기타 증거들을 수집하고 A에 대해 피의자로서 수사를 개시합니다. 이후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고, 검사가 피의자에 대해서 공소제기를 하면 그제서야 형사재판이 시작됩니다. (판사는 검사가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 기재 범죄사실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의해서 뒷받침이 되는지, 검사의 기소가 타당한지를 검토한 뒤 타당하다면 유죄, 그 외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이 들 때, 혹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무죄를 선고합니다. 기본적으로 수사기관처럼 모든 부분을 다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의 주장이 타당하냐 그르냐에 초점이 있습니다. )


이때 B는 고소장에 A로 부터 받은 피해사실과 A가 저지른 범죄사실에 대해서 기재하고 그를 처벌해줄 것을 요구하는 의사표시를 나타내면 됩니다. 고소는 구두로도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서면으로 제출합니다. 아마 위 경우는 '폭행' 이나 '상해'죄로 처벌해달라고 고소하게 되겠지요.


한편, B는 A에 대해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B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함으로써 민사소송이 시작됩니다. 이 때에는 B는 A에 대해서 폭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보통 민사적으로는 손해는 금전배상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A에게 맞아서 치료받느라 발생한 치료비 및 향후 치료비, 치료받느라 일을 못해서 돈을 못 번 부분에 대한 일실이익, 많이 다치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은 부분에 대한 위자료 등을 청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B는 A의 폭행사실, 그로 인한 피해정도 등을 증거를 같이 제출해서 스스로 증명을 해야합니다. 그 증명은 B가 법원에 증거를 제출함으로써 할 수 있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민사소송은 처분권주의라고 해서, 당사자가 판결을 내려달라고 신청한 사항, 주장한 사항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리도록 하고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203조). 그러니까 가만히 소장만 제출하면 아무것도 안되고, 증거도 열심히 내야 하고, 법적으로 필요한 주장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구구절절이 사연만 이야기한들 법원은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첫째도 증거 둘째도 증거입니다. (어떤 주장을 해야하는지 까다로운 사건은 변호사 조력을 꼭 받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이렇게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은 그 형태가 매우 다릅니다. 그러니 '고소장'이라고 대사를 대사를 적는다는 것을 '소장'이라고 잘못 대사를 적으면 정말정말 난리나겠죠ㅎㅎㅎㅎ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고(예외적으로 특정 분야의 손해배상 사건에 관해서만 3배배상을 도입한 예가 있긴 합니다만..), 손해배상은 전보배상(손해를 받은 만큼을 배상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민사소송으로는 드라마틱한 소송전개를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존재하긴 합니다. 증인의 경우도 그다지 증거로서 법원이 신뢰하는 편이 아니고, 주로 종이증거(서증, 일테면 계약서 같은)를 좀 더 믿어주는 편이라 스토리를 짜넣기에 좀 단조로운 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형사재판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들이 이미 많이 나와있어서 사건 전개 자체의 단조로움도 분명 있을 걸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사소송을 통한 법률드라마도 나름 신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사소송을 소재로 하면 증거를 당사자가 준비하고 법원에 제출해야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좀 더 당사자 입장에서 역동적인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을 소재로 하면 아무래도 당사자보다는 검사나 경찰이 사건의 중심인물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니까요.





팁으로, 왜 맨날 드라마나 영화에서 재벌 3세들이 다른 사람을 때려놓고 합의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릴게요. 폭행과 상해는 형사적으로 그 처리가 매우 다릅니다. 상해는 자연치유가 되지 못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을 때 인정되고, 폭행은 유형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데, 폭행죄(형법 제260조)는 소위 반의사불벌죄라고 해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처벌불원의사)를 하면 가해자에 대해 기소를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형법 제260조 제3항). 그래서 보통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불하고, 피해자는 처벌불원의사표시를 수사기관에 해주는 것이죠.


한편, 상해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가 합의를 해줘도 일단 기소가 안될 수는 없고, 기소유예나(검사 단계에서 기소를 해야 됨이 마땅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예외적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 재판에서 양형단계에서 유리한 요소로 작용될 뿐입니다.


어쨌거나, 합의금을 받으면 치료비 등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그게 아니라면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병행해서 진행하거나 수사가 마무리되고 형사재판이 진행될 때 즈음에 민사소송도 같이 제기해서 손해를 배상받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형사재판에서 벌금형이 나와도 그 벌금을 피해자한테 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민사소송을 통해서 피해를 배상받으려면 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나서도 사실 한참이 더 걸립니다. 피고가 재판에서 지고 나서 순순히 돈을 주면 좋은데 그런 사람이면 때리지도 않겠지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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