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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Mar 05. 2018

변호사님, 항소하실건가요?

재판에 불복할 때 쓰는 말 대략적 정리하기

법정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건의 위기를 드러낼 때, 확실한 에피소드라면 역시 '재판에서 지는 것'일 것입니다. 호기롭게 제시했던 증거들이 증거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법원이 증인의 증언을 믿어주지 않고, 당사자의 설명이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실제로 법적으로는 이기기 어려운 어떤 상황일 때 등등 다양한 이유로 재판에서 지게 됩니다.


이런 장면 많이들 보셨을 것 같습니다. 재판에서 지고 나오는 변호사, 검사에게 기자들이 몰려들고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변호사(검사)님, 항소하실건가요?"


영화 <미쓰와이프>

이런 극적인 장면에서 틀린 단어가 불쑥 등장하면 드라마의 긴장이고 뭐고 상당히 난감해질 것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항소, 상고 등의 단어는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들어본 단어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별 거 아닌 단어 하나로 드라마의 중요한 순간이 흔들려버리면 너무 속상할 것 같습니다.


'항소'란 1심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불복하고 2심 법원에 재판을 해달라고 청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법정공방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의 경우에 반드시 등장할 대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이 이길 것처럼 증인도 구하고 증거도 찾았는데, 상대방 변호사의 모략(?) 등으로 다 수포로 돌아가고 1심에서 패했을때, 주인공이 몰려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겠죠. "항소하실겁니까?", "네 저희는 항소합니다. 진실은 저희들 편입니다." 이런 대사를 치면서요. (너무 진부한가요^^;)


참고로, 항소는 민사재판에서는 판결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해야 하고, 형사재판은 판결을 선고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각 1심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함으로써 해야 합니다. 이 기간은 불변기간이라고 해서 변경이 불가능한 기한이기 때문에, 반드시 준수해야 합니다. 민사는 당사자 출석이 반드시 의무는 아니기 때문에 판결서를 송달(배달) 받은 날부터 항소기간이 진행이 되는 것이고, 형사재판은 원칙적으로 피고인이 출석을 해야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선고한 날부터 항소기간이 진행된다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비슷하게 헷갈리는 용어로 '상고'라는 표현이 있는데, 상고는 2심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판결을 내려달라고 청구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나라는 3심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2심 법원까지는 '사실심'이라고 해서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법적 판단을 내리게 되고 3심은 '법률심'이라고 해서 원칙적으로는 1,2심 법원이 판단한 사실관계는 유지하되 그 판단에 법률상 잘못이 없는지를 재판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상고심의 경우에는 법정변론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상고하겠습니다'라는 식의 대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항소와 상고를 합쳐서 '상소'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1심 재판에서 진 사람에게 '상소할거니?'라고 물어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반대로 2심 재판에서 진 사람에게 '항소할거니?'라고 물으면 완전 틀린 표현이 되겠지요.


비슷하게 '항고'라는 표현도 있는데, 항고는 법원이 소송절차에 관한 신청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거나 명령을 하는 경우에 이에 대해서 불복하는 행위입니다. 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항고기각), 이에 대해서 불복할 때는 '재항고'를 하게 됩니다. 한편, 불복할 수 없는 결정이나 명령도 존재합니다. 이 경우는 항고가 각하됩니다. (검사가 고소사건에 대해서 기소를 하지 않으면 고소를 한 사람도 검찰청에 항고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고소사건과 관련해서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는 방향을 설명해드릴게요)


그러니까, 만약에 A라는 사람이 B의 사업장에 매일 드나들며 행패를 부리면 B는 A를 형사사건으로 고소할 수 있겠지요.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다 마친 뒤 A에 대해서 업무방해의 점을 인정하여 검사가 기소를 하면 A는 B의 사업자에 매일 드나들며 행패를 부린 사실이 있는지 증거에 의해서 유무죄 판단을 받게 됩니다. 만일 A가 업무방해죄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그 피고인은 2심 법원에 '항소'를 할 수 있습니다. 2심 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면(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어서 검사가 항소를 했는데 검사의 '항소가 기각'되면 피고인에 대해 무죄판결이 난 것입니다. 반대로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어서 피고인이 항소를 했는데 피고인의 항소가 기각되면 피고인에 대해 유죄판결이 난 것이라 보면 됩니다), 피고인인 A는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겠지요.


한편, B는 A에 대해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할 수 있습니다. 뒤에 '신청'자가 붙으니 이건 신청사건입니다. 민사소송의 하나인데, A로 하여금 B의 사업장에 출입을 하지 않도록 하는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가처분신청에 따라 가처분결정을 내려주게 되죠. 법원이 B이 신청에 따라 A에게 B의 사업장에 출입을 금지하도록 결정을 내리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 간접강제로 위반 시 얼마- 이렇게 조건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A는 위 결정에 대해 '항고'를 할 수 있습니다. 항고가 기각되면 재항고를 할 수도 있지요.(번외로 B는 A로 인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민사소송을 할 수도 있습니다.)


위 과정에서 만약, '항소'했어-라고 말하면 변호사는 쉽게 아 2심 재판 중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다만 민사사건이냐 형사사건이냐를 추가로 확인할 것입니다. 그런데  '항고했어'라고 말하면 뭐에 대해 항고했냐고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한 글자 차이인데도 의미하는 바가 무척 다르기 때문이죠.




피고와 피고인의 구별이 중요하듯, 항소, 상고, 항고를 제대로 나누어 부르는 일은 제법 중요한 일입니다.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해당 사건이 어느 단계에 있는 것인지,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법률에서 정한 약속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기본적인 용어를 틀리게 사용하는 순간 법정드라마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만큼, 주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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