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논의 배경에 대하여
공수처 도입 논의가 활발합니다. 그 근저에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지 검찰의 무한정 거대한 권력과 부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공수처도입이 법조드라마의 갈등구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저의 기대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누가 뭐래도 권력형 비리를 다루는 드라마가 법조드라마의 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펀치>가 가끔 생각이 납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검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물고 물리는 권력싸움 안에서 소위 정의로운 검사와 부패한 검사가 뒤엉키게 되는 이야기죠. 아직 정주행을 못하고 있지만, tvN <비밀의 숲> 도 부패한 검사들과 권력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사기관은 검찰, 경찰이 있습니다. 검사가 수사의 주체이고, 경찰 중에서 사법경찰관이 수사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법경찰관은 수사를 개시하고 진행할 수 있지만,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고, 검사가 수사지휘를 할 경우에 이에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196조). 우리나라는 영장을 신청할 권한도 검사에게만 있기 때문에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급받고 싶을 때 검사에게 법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달라고 신청합니다(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29조). 사법경찰관이 수사를 종결하면 검찰에 사건기록 등을 편철(묶어서) 보내게 되는데, 이를 사건을 송치한다고 합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오면 검사는 직접 수사를 추가로 해서 기소/불기소(공소권없음, 혐의없음[증거불충분, 범죄인정안됨])을 결정해서 처분을 내립니다. 아니면 경찰에 보완수사를 지휘하고(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79조), 수사를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검찰은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합니다. 심지어 영장청구권도 검찰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권한이 권력이 되는 순간은, 기소해야 할 때 기소하지 않고, 기소되지 않아도 될 사람을 기소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권한의 남용이죠. 검찰개혁이 사법개혁의 중심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검찰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매번 '셀프개혁'을 자처하거나, 다른 권력형 비리를 열심히 캐서 개혁 여론을 잠재우는 방식을 취하면서 그다지 개혁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더킹>이 아주 인상적이고 리얼했던 기억이 납니다)
법조드라마들이 검찰 내부의 비리를 다루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검찰만큼 과도할 정도로 권력을 독점하고 제대로 견제받지 않는 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검사는 2004. 1. 20.자로 검찰청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검사 동일체원칙'이라는 원칙에 따라서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내용을 '법'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상명하복을 아예 법으로 명시하고 있었던 것이죠.
구 검찰청법
제7조 (검사동일체의 원칙)
①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
②검찰총장, 각급검찰청의 검사장과 지청장은 소속검사로 하여금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의 일부를 처리하게 할 수 있다.
③검찰총장과 각급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
그나마도 2004. 1. 20. 이후에 이 '검찰청법'은 개정되면서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내용이 "소속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른다"로 표현이 순화되었는데요, 각자 단독관청으로서 피의자에 대해서 기소/불기소를 결정할 수 있는 검사들이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라서 업무를 진행하고, 그 내부적으로는 상급자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문화 속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지요. 조금 나아진거지 도긴개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검찰청법
제7조(검찰사무에 관한 지휘ㆍ감독)
①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
②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제1항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자,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경찰간부나 재벌총수가 범죄를 저지르면 수사는 누가 하나요? 검사가 합니다. 국회의원이 범죄를 저지르면요? 검사가 합니다. 검사는요? 검찰총장은요? 법무부 장관은요? 대통령은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누가 수사하나요? 검사가 합니다.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을 겁니다. 본인 상사를 하급자인 검사가 수사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검사는 수사하는데 많은 압력을 느끼겠지요?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태까지는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검찰과는 별도 조직을 통해 수사를 진행하도록 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 역시 위와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의 직간접적인 지휘를 받지 않는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수사를 진행했던 것입니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22710068245472&outlink=1&ref=https%3A%2F%2Fsearch.daum.net
요즘 논의되고 있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쉽게 말하면 특별검사와 같은 제도를 상설기구화해서 검찰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자들에 대한 수사를 떼어오겠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공수처가 도입되면 검사 비리는 검찰청 소속 검사가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수처 소속 검사가 수사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예 소속된 조직이 다르니 기관과 기관 사이의 견제가 있을지언정 내부에서 상급자가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줄어들겠지요.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정의로운 검사가 재벌의 범죄행위를 인지하고 수사를 진행하다가 재벌과 유착되어 있는 선배 검사의 부당한 지시를 받는다. 수사검사는 이를 거부하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좌천성 인사처분을 받는다. 좌천받은 검사는 징계의 부당성을 다투지만 요지부동, 결국 스스로 옷을 벗고 검찰을 떠나게 된다.
자, 여기서 현재의 제도라면 퇴직한 검사는 위 재벌 수사를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검찰과의 유착관계는 어떻고요? 결국 다시 검찰에 위 사건을 고발하고 다른 검사로 하여금 수사가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수처가 있다면요? 위 퇴직한 검사는 공수처 검사로 채용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비리검사들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겠죠. 검사 잡는 검사의 좀 더 적극적인 활약을 그린 드라마를 원한다면, 가상으로라도 기소권과 수사권을 가진 별도의 조직을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반대로 이미 공수처가 있는데, 공수처 검사의 비리를 캐는 정의로운 검찰청 검사의 이야기도 신선하겠네요:) )
견제가 없는 권력기관은 반드시 부패합니다.
권력자들의 온갖 적폐청산을 현재 검찰이 나서서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비판받는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세월 동안 검찰이 제대로 기능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온갖 쓰레기와도 같은 부정부패사건들이 조금은 미연에 방지되었거나 앞서 수사되고 밝혀지고 처벌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겠죠. 더불어, 과연 검찰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수사하고 개혁을 할 수나 있는 것인가 하는 오래된 불신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공수처가 도입되면, 권력자들에 대한 부정부패사건을 주요 업무로 삼는 기관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고, 검찰-경찰-공수처가 상호 견제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권력형 비리를 다루는 법조드라마의 새로운 플롯의 탄생도 예고하게 되지 않을까요?
가끔 공수처 도입을 두고 옥상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옥상옥이라고 하면 위에 있다는 뜻인데, 검사나 권력자를 수사하는 일이 검사의 위에 서는 일은 아니잖아요? 공수처 도입을 옥상옥이라고 말하는 검찰은 사실상, 권력자 수사를 통해 본인들이 권력자의 위에 서있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