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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Mar 20. 2018

변호사는 사는 것(buy)이 아닙니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소송위임계약을 중심으로

어떤 시각으로 변호사와 관계를 맺느냐는 사건 수행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는 일과 변호사를 샀다고 생각하는 일 사이에는 상대방에게 은연중에 기대하게 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재벌가 회장의 아들이 횡령죄 등의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요구를 받습니다. 그러면 회장은 인터폰으로 비서를 방으로 불러서 상기된 표정으로 한마디를 합니다. "정 비서, 변호사를 사든 뭐든 해가지고 이 건 처리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고 해"


그러면 저는 이렇게 반응하죠. '아.... 저 등장인물은 돈으로 갑질하는 사람이니까 사람을 '산다'라고 일부러 표현한 것일 거야.' 저렇게 선임되는 변호사는 광범위한 업무 요구를 받을 테니 굉장히 많은 수임료를 지급받겠군. 이라고요:) 다시 말해 썩 정상적인 위임계약을 체결하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변호사라는 사람은 파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살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 의뢰인과 전화 통화를 하는데, "다른 회사들은 변호사를 살 돈이 없어가지고 그냥 합의를 했다네요."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ㅠㅠㅠ) 친구나 가까운 사람 같으면 "아, 변호사를 선임할 여건이 안되셨다구요"라든지 은근슬쩍 수정해드리기도 하는데, 사실 매번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시각으로 변호사와 관계를 맺느냐는 사건 수행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는 일과 샀다고 생각하는 일 사이에는 상대방에게 은연중에 기대하게 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변호사를 산다는 말은 흔히들 사용하시지만, 변호사의 시간을 샀다면 모를까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위임계약관계의 성격을 오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변호사는 그 사람의 직업이고, 대리인, 변호인은 소송절차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역할이 되겠지요. 의사같으면 000의사 선생님을 이번 수술의 집도의로 지정했다. 뭐 그런 식의 표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표현은, 아래와 같습니다.

000변호사를 --사건의 대리인으로 선임했다(민사/행정/가사/특허/형사고소사건)
000변호사를 피의자/피고인 ***의 변호인으로 선임했다(형사)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당사자나 그 밖의 관계인과 위임계약을 체결하거나, 국가나 지방단체, 공공기관 등의 위촉에 의해서 그의 소송에 관한 행위를 대리하고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사무를 하는 것을 그 직무로 합니다(변호사법 제3조).


그러면 변호사는 대리인으로 선임되기만 하면 당사자는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해결사일까요? 사실 많은 드라마들이 소위 '정의로운' 변호사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온갖 데를 뛰어다니고, 거의 수사관처럼 사건을 수사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그걸 또 무료로 해주고 그러지요. 어떤 경우는 재벌가의 집사처럼 모든 대소사와 소소한 일들을 다 처리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실 때 돈만 내면(사면) 변호사가 다 알아서 막 나쁜 일도 해주고, 상대방 협박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변호사는 변호사법에서 범죄를 저질러서 금고 이상의 형(금고, 징역 등)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난 뒤 5년이 지나지 않거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끝난 뒤 2년이 지나지 않거나, 선고유예를 받고 그 기간이 끝나지 않은 경우 등등 범죄를 저질러서 형을 산다던지 다른 결격사유가 있으면 변호사 등록이 취소되거나, 등록자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변호사 업 자체를 할 수 없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범죄가 될 만한 행위에는 가담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위법행위는 변호사의 업무범위가 아닙니다.


변호사법  
제1조(변호사의 사명)
①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②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제2조(변호사의 지위)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수행한다.

5조(변호사의 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변호사가 될 수 없다.  
1. 금고 이상의 형(刑)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아니한 자
2.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3.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
4.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의하여 파면되거나 이 법에 따라 제명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5. 징계처분에 의하여 해임된 후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6. 징계처분에 의하여 면직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7. 공무원 재직 중 징계처분에 의하여 정직되고 그 정직기간 중에 있는 자(이 경우 정직기간 중에 퇴직하더라도 해당 징계처분에 의한 정직기간이 끝날 때까지 정직기간 중에 있는 것으로 본다)
8.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
9.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
10. 이 법에 따라 영구제명된 자


또 한편으로는 변호사에게는 품위유지의무,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지 않을 의무, 비밀유지의무 등 여러 의무가 있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대한변호사협회 징계위원회나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 등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업무수행을 함에 있어서 위법한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위법행위를 한 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내리는 드라마도 가능하겠네요. 혹은 아래 징계사유가 상당히 모호하기 때문에 협회가 부당하게 변호사에게 징계절차를 개시한 스토리텔링도 가능하겠습니다. )


변호사법
제24조(품위유지의무 등)
① 변호사는 그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변호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5조(회칙준수의무) 변호사는 소속 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칙을 지켜야 한다.

제26조(비밀유지의무 등)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91조(징계 사유)
① 제90조 제1호에 해당하는 징계 사유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변호사의 직무와 관련하여 2회 이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를 포함한다) 그 형이 확정된 경우(과실범의 경우는 제외한다)
2. 이 법에 따라 2회 이상 정직 이상의 징계처분을 받은 후 다시 제2항에 따른 징계 사유가 있는 자로서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② 제90조 제2호부터 제5호까지의 규정에 해당하는 징계사유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이 법을 위반한 경우
2. 소속 지방변호사회나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칙을 위반한 경우
3. 직무의 내외를 막론하고 변호사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경우


재판은 법원을 상대로 하는 입찰설명회와 비슷합니다. 재판장이 누구 말을 들어줄까 하고 판단하기에 앞서 양쪽 이야기와 증거를 검토해보는 것이므로, 사건을 제일 잘 아는 당사자의 노력과 협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변호사를 선임해놓고서는  '아니 내가 변호사를 샀는데 알아서 하지 날 왜이렇게 귀찮게해?' 라고 생각하신다면, 엄청 유능한 변호사를 만나더라도 100% 패소하실겁니다


변호사들이 직접 증거를 찾아나서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의뢰인이 직접 관련된 증거를 수집하고, 변호사가 요구하는 증거들을 모아서 신속하게 전달하고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는 변호사들은 어떤 정도의 업무를 하도록 요구 받을까요? 그와 관련된 법원의 판결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죠.

변호사에게 소송사건을 의뢰하는 사건 의뢰인과 변호사와의 법률관계는 위임 또는 이와 유사한 계약관계라 할 것이고, 따라서 변호사가 의뢰인에 대하여 어떤 의무를 부담하는가 하는 것은 위임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결정될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변호사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법률가로서 사건 의뢰인으로부터 보수를 받고 소송사무 등을 위탁받아 처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전문인으로서 사건의뢰에 대하여 수임자로서 그가 통상 소유하고 있는 법률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활용하여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

즉, 변호사는 그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통상 요구되는 지식, 기술 및 능력을 소유하고, 그에게 주어진 직무수행에 있어서 최선의 판단을 행하며, 수임한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그의 지식과 기량을 통상의 주의와 최대의 성실함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수행할 것이 요구된다고 할 것인바, 그렇지 아니할 경우 사건 의뢰인의 재판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당할 우려가 있고, 이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일정 자격을 갖춘 변호사에게만 소송대리를 허용하는 민사소송법 및 변호사법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합당하기 때문이다( 부산고등법원 1995. 4. 13. 선고 94나11613 판결 참조).

나아가, 선관주의의무의 내용 및 정도에 관하여 보건대, 변호사가 개별적·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의 주의의무를 부담하는가 하는 것은 사건을 수임하게 된 경위, 위임된 사무의 내용 및 난이도, 사건의뢰인이 사건을 위임함에 있어서 사정 설명을 한 정도 등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좌우될 것이나, 그 내용을 유형화하여 보면 의뢰인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와 기대를 보호할 의무, 의뢰인의 손해를 방지할 의무, 적절한 조언과 주장·입증을 할 의무, 보고의무, 의뢰인의 상소기회를 보호할 의무 등이 포함될 것이고, 주의의무의 정도는 소송대리업무의 공익성, 독립성, 전문성에 비추어 그 위임받은 사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당해 사건을 면밀히 검토 숙지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을 표준으로 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인천지방법원 2004. 8. 4. 선고 2002가단80187 판결)


쉽게 말하면,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하여 재판상 할 수 있는 행위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적절한 조언을 하고, 재판과 관련된 법률서비스를 성실하게 제공하는것이 그 임무의 범위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결정은 의뢰인이 하셔야 합니다. 항소장을 낼건지, 반소를 제기 할 것인지, 조정에 합의할 것인지 등등. 그러므로 소송을 위해서 소송위임계약을 체결하셔놓고서 드라마처럼 온갖 걸 다 해주겠거니 하고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사건'단위로 소송행위를 변호사에게 위임하신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의 법률서비스를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계약이 아니고, 또 선택을 대신해주는 계약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여금반환을 받기 위해서 소장 및 소송진행을 위임하셔놓고서 갑자기 다른 가족간 상속분쟁소송이 생겼다면서 이것도 너 내 변호사니까, 내가 너 샀으니까 이것도 해줘야 되는거 아니야? 라는 식으로 해결해달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가족간 상속분쟁도 해당 변호사에게 맡기시려면 다시 위임계약을 체결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곧, 변호사라는 그 사람을 의뢰인의 모든 일을 처리해주게끔 '산' 것이 아니라 특정 사건별로 업무를 '위임'하는 것이 변호사와의 계약이기 때문에 사건별로 각각 위임관계를 형성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전체 내 업무 다를 위임하시는 것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그럴려면 정말 많은 비용을 지불하셔야겠지요?


물론 이 쯤 되면, 드라마는 해주는데 왜 현실 변호사들은 각박하게구냐, 이렇게 물어보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나리오 들에서는 변호사와 다른 등장인물의 관계가 의뢰인-변호사의 관계라기 보다, 그러니까 변호사가 자기 직무로서, 일로서, 먹고사는 업무로서 사건해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소명이나 친분에 의해서 변호사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지 변호사로서 일을 보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지점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위임범위도 모호하고, 변호사가 마치 당사자인 것처럼 온갖 사건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매우 다르겠지요.


자, 그럼 결론은 뭐라구요?

변호사는 사는 게 아닙니다. 변호사는 선임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게 이 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저는 이제는 진짜 변호사가 변화와 의뢰인의 관계에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나와도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성공보수때문에 의뢰인과 다투기도 하고, 열심히 소송을 수행하는데 비협조적인 의뢰인을 만나 왜 저 분은 자기 일인데 남의 일마냥 변호사한테 던져만 놓고 아무 일도 안하지하고 신세한탄하는 장면, 의뢰인이 성공보수 떼먹고 도망가버려서 직원들 월급을 못주는 변호사 등등 실제 직업인으로서의 변호사가 나오는 드라마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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