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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Apr 19. 2018

왜 변호사들은 비슷한 서류가방을 들고 다닐까?

민사소송 변론기일 진행절차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재판이 있어서 법원에 갔다. 당연히 서류가방에 기록봉투를 넣어서 갔다.


대개 변호사들은 법정에 가면 가방은 방청석에 두고 서류봉투와 변호사수첩(또는 휴대전화 - 다음 기일을 정하는 게 재판에서는 매우 중요한 절차 중 하나다) 만 꺼내서 앞으로 나가 변론을 진행하고 재판장과 원고 피고 사이에 다음 기일 일정을 정하고 나면 일어서서 방청석에 돌아와 가방에 기록봉투를 넣고 법정을 빠져나간다.


민사 변론기일은 재판장님 스타일에 따라서 형식적인 대화만 오고가는 경우도 있고, 요즘 구두변론을 강화하는 추세에 따라 질문을 많이 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순서는 일관되고 약간은 연극같기도 하다.

1) 우선 재판 시간에 법정에 들어가 방청석에 앉아있으면, 재판장이 사건번호를 부른다. 본인 사건번호가 맞으면 원고 피고석에 각자 서는데, 재판장은 그러면 출석확인을 하고 앉으라고 한다. 재판기일 전에 각자 내야 될 서류들- 준비서면이나 증거 등을 제출하고(요즘은 전자로 주로 소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원에 우편이나 직접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보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pdf파일 등을 업로드 하는 방식으로 서류를 제출한다)-을 '진술한다'라고 한다. '진술한다'는 것은 앞서 낸 준비서면에 쓴 내용을 법정에서 말한 것으로 친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더라도 재판기일에 '진술'하지 않으면 주장한 게 아니어서 의미가 없다.

2) 여타 공방이 오고가고 나면 재판장은 다음 기일을 정하기도 하고, 변론을 종결(더 법정에서 다투는 걸 듣지 않고 이제는 판결문을 쓰겠다는 의미)하고 선고기일(판결을 내리는 날)을 잡기도 한다. 약속을 잡는 것 마냥 언제가 괜찮냐 하고 물어보는데 대체로 1달 이후 정도를 잡는 편이다. 가끔은 '기일을 추정하다'는 말도 하는데, 기일을 추후 지정하겠다는 의미로 감정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나, 기타 다음 주장을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이는 경우에 많이 사용한다.
-- 나는 때로 변호사 없이 재판기일에 출석하신 당사자들께서 과연 기일을 추정하고, 라는 재판장님의 말을 이해하셨을지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그 외에도 변론갱신, 적의판단, 기일속행, 결심 등 뭔가 이상한 느낌의 단어들이 재판도중에 속출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3) 날짜를 정하고 나면 재판이 끝난 것이다. 재판장이 '가셔도 좋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말 없어도 그냥 날짜 정하면 일어나서 나오면 된다. 처음 재판에 출석했던 날, 언제 앉고 언제 일어서서 나가야 되는지 고민스러웠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냥 다음 순서인 사람을 위해 얼른 일어나서 방청석에 내 가방자리로 돌아온다.


나도 마찬가지로 기록봉투를 들고 재판을 하고 뒤를 돌아 방청석으로 왔다. 그런데, 어라 내 가방이 원래 두었던 자리 한 칸 뒤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서 열어봤더니 내 가방이 아니었다. 그렇다. 같은 가방이라 다른 변호사님이 착각하고 가져가신 것이었다. 내용물도 확인해보지 않고 그냥 본인 기록봉투를 집어넣고 법정을 빠져나가신 게 분명했다. 얼마나 바빴으면 싶어서 안쓰럽기도 했으나.. 나는 휴대전화도 그 가방 안에 있었으므로 약간 멍해졌고.. 결국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실무관에게 내 앞 재판 출석한 변호사님 성함이랑 법무법인 이름을 알려달라고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해프닝이 일어났을까 하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가방이 같은 것이어서 그렇다.


변호사들은 대개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A4용지 묶음(두껍게는 두께 20센티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서류가방을 들고 다닌다.


이런거나...


이런거...



 적당한 크기의 가볍고 괜찮은 서류가방을 구하는 것은 변호사 사이에서도 제법 핫한 이슈이다. 내 경우는 최근에 펠트로 된 큰 가방을 구입했는데, 집에서 바로 법원에 가야 될 때면 해당 가방을 사용한다. 모임에 들고 갔더니 많은 변호사님들께서 가볍고 좋아보인다며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시기도.



그러다 보니 변호사협회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면 사은품으로 서류가방을 주로 준비한다. 다른 사은품도 있지만, 내 경우는 초반 2년 동안 매해 서류가방을 골랐다. 교대역, 서초역, 강남역, 역삼역, 삼성역 등 변호사 밀집지역에는 가방만 봐도 아 저 사람은 변호사구나를 알 수 있다. 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한쪽 어깨에 매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게 무거워서 백팩을 선호하는 변호사들도 많다).



요즘 젊은 변호사님들은 기록을 종이 대신 아이패드나 노트북에 넣어서 전자문서로 들고다니는 경우도 있어서 신세대 변호사 캐릭터 구축에는 이쪽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중견 변호사님은 두꺼운 기록이 들어간 노란 봉투와 가죽 서류가방을, 신세대 변호사는 가벼운 핸드백 안에 아이패드 혹은 터치패드 노트북을.

그런데 사실 나는 여전히 기록봉투가 더 좋다. 아이패드가 없어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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