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빈 May 21. 2018

판사님, 왜 오늘 판결 안 해주세요?

변론종결일과 선고기일은 다른 날

얼마 전 재판이 있어서 법원에 갔는데, 대리인 없이 당사자 소송을 하시는 원고가 재판장 판사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재판이 제 사건인데다가 증인신문도 예정되어 있어서 재판장이 위 다툼으로 기분이 나빠지면 어떡하나 하고 노심초사하며 말다툼을 지켜보았습니다. 


원고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아니 판사님, 저번에 오늘 종결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또 다음에 판결한다고 그러세요? " 재판장 판사는 너무나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제가 저번에 오늘 변론종결한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다음 기일에 선고를 한다고요." 하고, 원고는 또 기분이 나빠져서 "왜 저한테 거짓말하세요. 자꾸 재판을 판사님이 지연을 시키니까..." 라고 하고, 재판장은 '지연'이라는 단어에 발끈하여 "변론종결을 해야 선고를 할거 아닙니까!"라고 대화가 맴맴도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재판장은 화가 나서 "지연이라니요! 제가 보통 기일을 4주 단위로 잡는데 빨리 진행해달라고 하셔서 2주마다 기일 잡아드렸는데 지금 저한테 지연이라 그러시는 겁니까? 일반 속도대로 진행해드려요?"라고 말을 했고,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원고가 "아니.. 그거는 네.. 감사하고요.. 알겠습니다.."하고 진정했습니다. 판사는 여전히 화가 나서 "가세요."라고 한마디 하셨지요.  다음 재판인 저는 정말 마음이 타들어갔.....


사실, 위 대화는 '변론종결'이라는 개념과 '선고기일'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원고와,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원고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줄 친절함이 부족한 재판장 판사의 의사소통 실패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민사재판은 '변론기일'을 진행하여 소송을 심리하게 됩니다. 


민사재판의 진행순서는 보통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내용을 적은 소장(손해배상, 의무이행청구, 이혼, 부당이득반환, 건물인도 등등)을 법원에 제출하면(소장이 무엇인지는 다른 글 "소장은 고소장의 줄임말이 아니다"를 참조), 법원이 피고에게 소장을 송달(우편으로 보내는 등의 행위)하게 되고, 소장을 송달받은 피고는 이에 대해 법원에 답변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그러면 법원은 답변서를 원고에게 또 송달해줍니다. 


이후 법원은 변론기일(법원에 원고와 피고가 나와서 제출한 소장과 답변서, 준비서면, 증거 등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주장하는 날)을 지정합니다. 만약에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은 변론기일을 열지 않고 선고기일을 바로잡기도 합니다. 


민사소송법 
제248조(소제기의 방식) 소는 법원에 소장을 제출함으로써 제기한다.
제255조(소장부본의 송달) ①법원은 소장의 부본을 피고에게 송달하여야 한다.
제256조(답변서의 제출의무) ①피고가 원고의 청구를 다투는 경우에는 소장의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피고가 공시송달의 방법에 따라 소장의 부본을 송달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법원은 소장의 부본을 송달할 때에 제1항의 취지를 피고에게 알려야 한다.
③법원은 답변서의 부본을 원고에게 송달하여야 한다.
제257조(변론 없이 하는 판결) ①법원은 피고가 제256조 제1항의 답변서를 제출하지 아니한 때에는 청구의 원인이 된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보고 변론 없이 판결할 수 있다. 다만, 직권으로 조사할 사항이 있거나 판결이 선고되기까지 피고가 원고의 청구를 다투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피고가 청구의 원인이 된 사실을 모두 자백하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하고 따로 항변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제1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③법원은 피고에게 소장의 부본을 송달할 때에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따라 변론 없이 판결을 선고할 기일을 함께 통지할 수 있다.
제258조(변론기일의 지정) ① 재판장은 제257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변론 없이 판결하는 경우 외에는 바로 변론기일을 정하여야 한다. 다만, 사건을 변론준비절차에 부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재판장은 변론준비절차가 끝난 경우에는 바로 변론기일을 정하여야 한다.


변론기일은 한 번만 지정해서 끝낼 수도 있고, 몇 번의 기회를 더 부여해서 추가로 증거를 제출하고 주장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증거 중에 증인을 신청하면, 증인신문기일을 열고, 감정을 신청하면 감정 기일을 열어 감정인을 지정하기도 하는 등의 절차가 진행됩니다. 


위의 절차들이 마무리되고, 자료도 다 제출되었고 주장도 다 진행되었다 싶으면 재판장은 "변론을 종결"하고 몇 주 정도 뒤에 날로 "선고기일"을 지정합니다. 변론이 종결되면 당사자는 법원에 증거를 추가로 제출할 수는 없고 선고기일 전에 '참고자료'로 서면을 제출하거나 자료를 제출하게 됩니다. 


민사소송법
제205조(판결의 효력발생) 판결은 선고로 효력이 생긴다.
제206조(선고의 방식) 판결은 재판장이 판결원본에 따라 주문을 읽어 선고하며, 필요한 때에는 이유를 간략히 설명할 수 있다.
제207조(선고기일) ①판결은 변론이 종결된 날부터 2주 이내에 선고하여야 하며, 복잡한 사건이나 그 밖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도 변론이 종결된 날부터 4주를 넘겨서는 아니 된다.
②판결은 당사자가 출석하지 아니하여도 선고할 수 있다.
제210조(판결서의 송달) ①법원사무관등은 판결서를 받은 날부터 2주 이내에 당사자에게 송달하여야 한다.
②판결서는 정본으로 송달한다.


선고기일은 말 그대로 판결을 선고하는 날로, 사건의 담당 판사가 판결문을 작성하여 이를 발표하는 날입니다. 민사사건은 사실 직접 판결 선고일에 법원에 출석할 필요는 없고(당일에 가도 주문만 알려주거나 간략하게 내용만 요약해서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우편으로 판결서를 송달해줍니다. 


그렇다면, 판사가 판결을 선고하려면 판결문을 써야 하겠죠? 변론기일동안 원고와 피고가 낸 증거와 서면도 정리해봐야 할 것이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론기일을 종결하여 더는 자료를 제출하거나 새로운 증거를 내지 못하게 일단 마감을 하는 것이고, 이후에 선고기일에 판결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재판장과 싸웠던 원고가 무엇을 헷갈렸는지 아셨을 것 같네요. 재판장은 다음 기일에 '변론을 종결'하고 이제 선고기일을 잡아서 선고를 하겠다는 취지로 으레 "다음 기일에 변론 종결하고 선고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소송절차에 대한 지식이 없는 원고는 "다음 기일에 판결을 선고한다"라고 이해를 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소송절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재판장님들이 조금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다음 기일에 변론을 종결하고 그다음 선고기일을 잡아서 판결 선고를 하겠다"라고 말했더라면 위와 같은 말싸움은 안 해도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법조인들끼리 통하는 문장 줄임말은 사실, 많은 오해를 낳지요. 일상생활에서도 물론 그렇지만, 계약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재판을 진행할 때에도 상대방은 상대방 좋을 대로 이해해버리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저의 재판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저는 아직 주장할게 남아서 변론기일을 한 번 더 잡았습니다. 아마 다음 기일에는 변론을 종결할 것 같네요.

이제 제가 이렇게만 말해도 무슨 말인지 대충 아실 것 같나요?:D







매거진의 이전글 왜 변호사들은 비슷한 서류가방을 들고 다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