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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come rainfall Apr 11. 2019

살아는 있습니다

회사에서 젊은 직원이 나에게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은 적이 있다. “차장님은 동생분이랑 어떻게 사시나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생활하시나요?” 그에게 40대라는 나이는 일단 아득할 테고, 40대인데 결혼하지 않는 데다 결혼 얘기도 꺼내지 않는 삶이 잘 상상이 되지 않을 테고, 그렇게까지 나이를 먹어서 늙은 자매와 함께 산다는 것이 가늠이 되지 않을 테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40대인데 동생과 산다’고 말하면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아 어쩌다가’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경우(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세요? 동생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그럼?), 또 하나는 ‘안 싸우세요?’(나이들어 형제자매와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은가요?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거죠?)
나와 동생은 둘다 40대 비혼. 나는 42살, 동생은 39살이니 아직 3040 비혼이라고 해두자. 결혼을 하지 않을 확률이 100퍼센트에 무한수렴한다. 둘 다 어찌저찌 돈을 벌어 독립생계를 꾸리고 있지만 공동경비를 지출하여 함께 나눠쓴다. 방을 하나씩 나눠 쓰지만 부엌과 욕실을 공유한다. 각자의 생활에 큰 관심도 없고 부모자식처럼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동거인으로서 생활 규칙이 있다.
혼자 살기를 꿈꾼 적도 많고 둘이 사는 게 딱히 더 좋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살고 있다. 사실 모든 게 그랬다. 최선을 선택한 건 아니었고 살다보니,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살다보니 비혼이고 살다보니 동생과 동거, 살다보니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다. 생각이 없는 건지 의지박약인 건지 모르겠지만 살다보니 그렇다.
어쩌다보니 주어진 인생을 어쩌다보니 살아나가며 어쩌다보니 40대 비혼자매가 함께하는, 이 어쩌다보니의 우주를 짧은 글로 남기고 싶다. 마음먹은대로 해나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생긴 일이 만드는 무늬와 그림자를 한참 들여다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어’ 하고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리지만 어쨌든 그 파도를 타고 서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지내, 물으면 살아는 있어, 대답했다. 40대 비혼자매라고 다르지 않다. 대단할 것도 초라할 것도 없이, 파도에 휩쓸리고 넘어지면서도 파도를 타고 있다.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서로 물에 빠진 꼴을 보다가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각자의 서핑 보드를 잡기에 바쁘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40대 비혼자매 역시, 살아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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