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의 원동력
깃털들이 다 헤진 셔틀콕 하나가 코트 위에 살포시 내려 앉는다. 24:21 이었던 점수가 25점으로 바뀌며 승리가 결정된다. 희비가 엇갈린 양코트의 얼굴들과 "Re?" 라는 물음에 콜을 외치며 다시 한번 경기가 이어진다.
배드민턴 셔틀콕이 네트를 넘나드는 것을 보며, 나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충동 중 하나를 목격했다. 친구가 마지막 포인트를 놓쳤을 때 그의 얼굴에 스친 좌절감과 아쉬움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 한 판 더?"라는 외침. 이 순간, 승부욕이라는 감정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무언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왜 이기려고 하는가? 이 질문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층에 닿아 있다. 승부욕은 마치 중력과 같다.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항상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의 행동을 끊임없이 좌우한다. 두 살배기 아이가 블록 쌓기에서 형을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혹은 칠십 노인이 바둑판 앞에서 보이는 진지함을. 승부욕은 나이와 상관없이, 문화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학습된 행동이 아니라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인걸까?
수만 년 전, 우리 조상들에게 경쟁은 생존의 문제였다. 더 빠른 사냥꾼이 더 많은 먹이를 얻었고, 더 영리한 개체가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다. 승리는 곧 생명이었고,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경쟁 본능이 강한 개체들이 선택되고 번식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소한 게임에서도 승부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대의 승부욕은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선다. 우리는 더 이상 사자와 맞서 싸우거나 열매를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시험 점수로, 연봉으로, 심지어 SNS의 '좋아요' 개수로 경쟁한다. 이는 우리의 생존이 사냥 같은 단순한 것에서 더 다양하고 넓은 분야로 뻗어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승부욕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데 있다. 친구가 패배 후 즉시 재경기를 요구한 것은 단순히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성장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승부욕은 우리를 안주하지 않게 만들고, 끊임없이 발전하도록 추진하는 엔진인 셈이다. 이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진보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이 더 정확한 이론을 세우려 경쟁하고, 예술가들이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려 애쓰며, 기업가들이 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려 노력하는 모든 과정에는 승부욕이 깔려 있다. 만약 인류에게 이런 경쟁 정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동굴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와의 다음 경기에서 나는 이길 것이다. 아니, 적어도 이기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 자체가 바로 인간다운 삶의 증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