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당
냉장고 한구석, 깍둑썰기로 썰어진 수박이 들어있는 아마 수박 반통 혹은 반의 반통이 잘려 들어있는 통이 있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손은 뚜껑을 열고 그중 하나를 야무지게 먹고 있었다. 이미 시작했으면 어쩔 수 없지, 수박이 계속 들어간다. 수분이 너무 많아서 포만감보다는 시원함 그 자체가 더 크게 다가와 마음만 먹으면 이 통을 다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는 수박을 먹다 보면 이제는 멈춰야 할 것 같은 죄책감마저 들게 되는 순간이 마지막 한 조각 수박을 입에 넣고 뚜껑을 다시 닫는다. 아마 엄마가 그를 보면 "누가 먹었는지는 몰라도 야무지게 먹었네"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껍질이 모두 까진 채, 포크 하나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빨간 수박. 투명한 통에 담겨있는 빨간색 수박은 여름의 한구석 누릴 수 있는 시원하게 먹을 때 가장 맛있는 과일이다. 만화책에 그려진 것처럼 초록색 껍질에 달린 수박을 한 손에 들고서 선풍기를 쐬면서 가족들과 도란도란 앉아 먹는 것도 맛있지만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다리를 책상의 한 구석에 올린 채 에어컨을 틀어 냉기 속에서 곱게 썰어진 수박을 먹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다. 적어도 여름의 뜨거움을 피해 기분이 가 좋아진다.
수박을 엄청 좋아한다거나, 여름이 되면 수박을 꼭 먹어야 한다! 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여름휴가를 가거나 계곡을 갔을 때, 넣어둘 수박이 없다면 잘라둔 수박이 없다면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은 뭔가 제철 과일이라는 단어가 점점 퇴색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제철 과일의 이미지를 아직 강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 겨울에 산딸기를 먹고 싶어 온 산을 뒤졌던 한 효자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과일은 겨울에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먹고 싶은 과일의 대부분이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것으로 바뀌며 딸기는 겨울에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수입되는 많은 과일들도 아무 때나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수박은 아직 여름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갖고 있다.
여름이 가장 맛있는 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름이 아니라면 굳이 찾지 않을 과일이기도 하다. 덥지 않은 시간에, 수박의 매력은 반감되어 다른 과일을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벚꽃도 1년에 한 달 필까 말까 하는데 수박은 3달이나 먹으니까 뭐, 수박의 중심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당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질리지 않는 수박 종종 먹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