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행복하기

오뚜기 컵라면 밑면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어제의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허기 진 아침, 찬장에서 컵라면 하나를 꺼낸다. 아무 생각 없이 꺼낸 컵라면의 밑면에 유통기한 외 수상한 글자가 있다. "무조건 행복하기"


갑작스러운 울림이- 속이 울렁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이지만 무조건 행복하기라는 문장은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가장 큰 본질을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막상 내 상황이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다음 3가지 보기 중( "불행하다", "그저 그렇다", "행복하다") 가장 많은 답변은 "그저 그렇다"가 아닐까 싶다. 특히 불만족스럽지도 않지만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상상해 볼 때, 어떤 것을 통해 행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돈이 무지하게 많다면, 일을 안 해도 된다면(이건 진짜일 것 같긴 하다), 더 똑똑하다면, 더 잘생겼다면 등등 언젠가 가끔 결핍을 느끼는 부분이 충족된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프를 탈탈 털어놓고 커피포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물을 끓는것을 기다리는 것도 잠시 소파에 누워 눈은 반쯤 뜬채 흰색의 약간은 울퉁불퉁한 벽지를 바라본다.


하지만 무조건 행복하기의 앞 단어 "무조건"은 그러한 조건들을 없애버린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런 부가적인 조건이 없는 상태에서의 행복을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의 상태 그대로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지금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미 닥쳐온 삶의 한 순간은 회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다. 1분 1초가 흘러가는 지속되는 지금을 그저 마주해야 할 뿐이다. 하지만 가끔 지금이 지금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좀 더 빨리 이 순간이 왔다면, 더 늦게 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지금의 장면을 인생의 타임라인 한 부분에 꽂아놓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지금만 있을 뿐.


틱, 포트가 꺼지는 소리를 듣고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선보다 약간 적게.


이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그 과정을 인내하면서 행복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을 올라갈 때, 그 산의 정상에 올라가서야 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등산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행복해 할 수 있어야 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청년이 있다. 그의 목표는 언젠가 42.195km를 2시간대에 뛰는 것이다. 하루하루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며 점점 더 빠르고 오랫동안 뛸 수 있는 선수가 되었지만 한계에 다다라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한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을 즐겼다면 그는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무조건은 우리가 지금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짧지만 긴 3분이 지나고 입에 청소기가 달린듯 무섭게 면들이 흘러들어간다. 후루루루룩


두 번째는 "행복하기"이다. 행복하자도 아니고, 행복하길도 하니고 행복하기이다. 이 단어는 나의 의지를 담는다. 나의 의지로 행복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을, 내가 어떤 조건을 달성하면 획득할 수 있는 퀘스트 보상같이 생각하기 쉽다. 돈이 많다면, 일을 안 해도 된다면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행복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은 사실 내가 행복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면 그만이다. 등산의 과정이 즐거운 것, 노력의 순간은 괴롭지만 그 노력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행복의 여하를 결정할 수 있다.


몇분 간의 후루룩이 끝나고 국물 두입정도 마신다. 몸에 안좋다지만 이것이 행복이지.


컵라면의 한 구석에 쓰여있는 문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국어시간에 시를 배우면서 실제로 작가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을 하는 것 마냥 포장에 포장을 더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은 나에게 달렸다는 것과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의 춤을 추고 있는가에 대해 이보다 더 적절한 짧은 문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무조건 행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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