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
어딘가에 '문해력'을 검색하면 mz 세대들의 문해력 감소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거리가 되어 표지를 장식한다. 그리고 기사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특정 단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두발 자유화', '우천시 장소변경', '시발점' 등의 단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해 문해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문해력은 그런 것이 아니다. 문장이나 글 전체에 대한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 문해력이다. 오로지 특정한 단어들만 놓고 문해력을 운운하는 것은 마치 신세대들의 단어들이 채워진 문장을 보고 오히려 기성세대들의 문해력이 딸린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옛날 유행어 중 하나인 '어쩔 티브이', '꾸안꾸' 등의 단어들이 적혀 있는 문장과 글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문해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자를 많이 배우지 않고 영어를 더 먼저 배우는 요즘 아이들에게 단순히 한자가 포함된 단어의 뜻을 모른다고 타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서 그렇다, 한자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 등등 수많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성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성인 중 작년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도 않은 비율은 60%에 달한다. 10명 중 6명이 책을 읽지도 않는데, 그들의 자녀로 하여금 어떻게 책을 읽힐 것이며, 어떤 책을 골라줄 수 있을까? 문해력은 꾸준히 글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긴 글을 많이 읽고 해석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제공할 글을 제공할 콘텐츠가 없다. 책을 보지 않는다. 신문도 보지 않는다. 지하철 한가운데서 360도를 돌아보면 10명 중 8명 이상이 스마트폰에 빨려 들어갈 듯이 고개를 처박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책을 읽는 일부, 신문을 보는 일부, 잡지를 보는 일부가 있었지만 그 비율은 꾸준히 감소했고 이제는 사라졌다. 아무도 모범을 보이지 않는 일을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문해력 논란은 사실, 철저하게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새로운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세계들을 새로운 세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치는 행위다. 어쩌면 불편함의 기원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기성세대의 시간이, 시대가 만들어낸 네모난 틀을 통과하지 못하는 별표 모양의 새로운 세대들은 확실히 기성세대와는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변화된 삶을 몸으로는 받아들였지만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스마트폰을 끼고 살지만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하다. 새로운 세대들은 그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들이 나열된 문장을 받아들이고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숏폼 같은 영상들을 2배속 3배속을 하며 영상들을 가장 빠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것이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는 모르겠지만 문해력이 감소한 대신 영상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
게다가 아직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 모습을 바꿀 필요가 있다. 옛날에는 문장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경제적인 면에서 손해였다. 더 많은 잉크를 쓰고 더 많은 종이를 써야 했기 때문에 '비가 오면'이라는 5글자를 한자를 통해 '우천시'라는 3글자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많이 줄어들었다. '우천시'를 '비가 오면'으로 '두발 자유화'를 '머리카락 길이 제한 없음'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고 바꾸는 것이 오히려 맞는 방향으로 보인다.
문해력 논란은 단순히 세대 간의 차이일 수 있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이를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