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by 거의모든것의리뷰

나는 자비와 관대는 여유로움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여유가 없다면 본인도 모르게 삶이 팍팍해지고 작은 것에도 일희일비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갈라 치기를 하면서 극단적인 쪽이 점점 힘을 받는 것도 여유가 없는 삶에서 조금이라도 나에게 이득이 되는 쪽을 향한 몸부림으로 보았다. 성장이 정체된 파이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 편을 나누고, 그 편에서도 또 편을 나누게 되면서 이웃이 동료가 함께 나아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경쟁자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라는 책은 이러한 경향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었다. 결핍은 바로 우리의 눈을 오직 경주마처럼 당장 눈앞에 놓인 일밖에 처리하지 못하게 한다.


두 가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제적 결핍과 시간적 결핍 중 경제적 결핍을 먼저 예로 들어보면, 누군가의 카드값이 연체되었다고 하자. 예상보다 더 많이 나온 카드값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당연한 해결법으로 보이겠지만 그것이 당장 마주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 연체를 해결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대출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이자와 함께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이미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그 미래보다 지금 당장 지출이 필요한 부분들 때문에 그 미래를 바라보지 못한다. 당장 다가오는 대출 이자와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생활비 등은 '대출'이라는 문제를 미봉책이라는 이름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제한된 수입과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빚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내몰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최근, 7년 이상 5천만 원 이하의 빚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주기로 결정한 것처럼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빚을 대신 탕감해 주었다. 이후, 그들의 삶을 지켜봤을 때의 결과는 결국 똑같이, 어느새 빚에 눌려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사람이 문제인가?라고 생각하자마자 그들은 그 원인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한 대응력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빚을 탕감받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저축도 하고 해방된 이자에서 살아가면서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의료비등 계획에 없던 경제적 지출은 그들의 삶을 다시 대출과 상환의 늪에 빠뜨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제한된 수입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한 대비할 능력과 의지가 없었고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는 사람들이 이자를 내지 않는 만큼 대비를 했어야 하는데 추가적인 지출이 발생했다고 꼬집으며 단순한 탕감이 아니라 삶의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함을 말한다. 이를 테면 자동이체를 통해 예적금 외에도 파킹통장에 유동적인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시간의 결핍이다. 자고로 갓생을 사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쪼개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는 시간을 촘촘히 채워 우리의 삶에서 낭비되는 시간을 막는다면 더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는 마치 예상치 못한 일이 가난한 사람을 다시 빚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것처럼 시간에 대한 빚을 만들어버린다. 한번 밀리기 시작한 일들은 또 다른 일을 밀리게 만든다. 고속도로에서 맨 앞의 차가 브레이크와 가속을 반복하면 뒤에 정체가 발생하듯이, 더 빡빡한 스케줄은 결국 사람이 일에 치이게 만든다. 이는 우리를 통상 두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게 만들고, 과부하가 걸린 뇌는 일에 대한 정확성을 낮추고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이 책은 약간의 여유를 주장한다. 월급의 일부분을 파킹통장에 넣어두는 일, 시간표 사이사이 조금 더 넓은 간격을 마련하는 일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들을 보다 수월하고 집중한 상태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부자가 되려면 포르셰를 타라"는 책과 오히려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포르셰를 타는 책의 이야기는 포르셰를 삼으로써 얻어지는 경제적인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온몸으로 노력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결론은 밸런스이다. 결핍은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하기도 하지만 다른 부분을 신경 쓰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런 결핍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도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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