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요정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여행 가는 이들이 꼭 데려가야 할 사람이 있다면 날씨요정이다.


자칭 날씨요정들은 장마철이라도, 그전에 날씨가 좋지 않았더라도 본인이 여행하면 꼭 날씨가 좋아진다는 그런 전설을 써 내려간다. 몇몇 예시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진짜인가? 하고 믿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여행의 날씨가 좋다면 그 샤머니즘을 끊어내지 못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영화 엑스맨의 날씨를 조절하는 "스톰"이 아닌 이상 사람의 존재가 날씨를 바꿀리는 만무하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를 개인의 운으로 조종한다는 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소소한 행복을 준다.


지난 보홀 여행에서 날씨를 보며 우리의 여행 동안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비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에 친구 중 한 명은 "와 날씨 개 망했다"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다른 친구가 "아 나 날씨요정임~ 돈워리"라고 말을 하며 일기예보는 변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안심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보홀에 도착했을 때 찌는듯한 더위에 비는 안 온다며 좋아했고, 우리의 일정을 피해서 내리는 빗방울에 날씨요정 친구는 어깨가 하늘까지 올라갔다. 사실 날씨에 맞게 움직이지 않았겠지만 이를 보고 날씨요정이라는 존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작은 미신들은 이렇게 우리 삶에 스며든다. 시험 전날 샤워를 해야 한다거나, 발표 전에는 꼭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거나. 이런 의식들이 실제로 결과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날씨요정도 마찬가지다. 비가 올까 봐 전전긍긍하는 대신, "괜찮아, 내가 날씨요정이니까"라고 속삭이는 순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설령 비가 와도 "어, 잠깐만 온 거네" 혹은 "비 오는 날의 여행지라니 낭만 치사량이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런 작은 믿음들이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방어막인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을 지새우기보다 근거 없는 믿음으로 그 걱정을 덮어두는 것. 물론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다. 하지만 일상의 작은 징크스나 미신들은 다르다. 그것들은 우리를 현실에서 도피시키는 게 아니라, 현실을 조금 더 견딜 만하게 만들어준다.


다음 주 어디선가 누군가는 "날씨요정"이라며 인스타를 올리고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장마가 시작되는 한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옆의 사람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어도, 마음의 근거는 충분하니까. 작은 미신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바꿔준다. 어릴 적 산타클로스를 믿으며 조금이라도 더 착한 일을 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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