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改革)과 혁명(革命)

by 거의모든것의리뷰

당신 앞에 망가진 시계가 있다. 초침이 멈춰 서고, 시간이 엉망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뒷면을 열어 고장 난 부품만 교체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시계를 분해해서 처음부터 다시 조립할 것인가? 전자가 개혁이라면, 후자가 혁명이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문제가 되는 부분만 개선한다 - 개혁

2. 문제가 되는 근본 원인을 찾아 뜯어고친다 - 혁명


흥미롭게도 두 단어 모두 같은 한자 '혁(革)'을 쓴다. 이 글자는 본래 짐승의 가죽을 벗겨 가공한다는 뜻으로, 낡은 것을 바꾼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뒤에 붙는 글자가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개혁(改革)'의 '개(改)'는 고치고 바꾼다는 뜻이지만, 기존 틀 안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마치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처럼. 반면 '혁명(革命)'의 '명(命)'은 하늘의 명령, 즉 운명을 바꾼다는 뜻이다. 기존 질서 자체가 하늘의 뜻에 어긋난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처럼 말이다.


개혁이든 혁명이든, 모든 변화는 "이건 문제야"라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여기서 길이 갈린다.

혁명가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문제의 뿌리가 시스템 자체에 있어. 전부 뒤엎어야 해." 개혁가들은 다르게 접근한다. "시스템은 괜찮아. 몇 가지만 손보면 돼."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차이가 결국 권력의 차이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현재 시스템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개혁을 선호한다. 잃을 게 많으니까. 반대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혁명을 꿈꾼다. 새로운 시스템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으니까.


이런 딜레마는 우리 역사에서도 생생하게 펼쳐졌다.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침입 앞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갈림길에 섰다.


개화파는 말했다. "조선 왕조는 그대로 두고, 서구 문물만 받아들이자."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교육제도를 바꾸고, 상업을 키우고, 관료제를 개선하면 된다고 믿었다. 왕조라는 뼈대는 건드리지 말고. 하지만 동학농민군은 달랐다. "썩은 뿌리째 뽑아야 해." 기존 체제 자체가 문제라고 봤다. 나중에 등장한 일부 독립운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다.


같은 시기, 비슷한 위기를 맞은 일본은 어땠을까? 메이지유신이라는 이름의 혁명을 택했다. 지방분권 시스템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중앙집권적 체계를 새로 세웠다.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대담하게 받아들였다. 결과는? 강대국으로의 변신이었다. 조선과 청나라는 기존 권력이 혁명의 시도들을 짓눌렀다. 개혁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항상 혁명이 답일까? 그렇지도 않다.

혁명은 양날의 검이다. 성공하면 역사책에 '위대한 혁명'으로 기록되고, 혁명가는 영웅이 된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패하면? '반란'이라는 딱지가 붙고, 주동자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개혁이 선택된다. 근본 원인을 뜯어고치는 일은 너무 많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리스크와 효과는 대체로 비례한다. 개혁은 안전하지만 한계가 있고, 혁명은 위험하지만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제3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개혁과 혁명 사이 어딘가에 있는 길.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진짜 '창조적 파괴'를 동반하지 않는 한, 결국 임시방편에 그친다. 언젠가는 가다올 자율주행차가 완전히 도입되려면 모든 차가 자율주행차여야 한다. 하지만 그 과도기는? 일반 차와 자율주행차가 뒤섞인 도로는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때로는 근본적 변화 없이 억지로 새것을 끼워 맞추려다 보면, 더 복잡하고 비싼 해결책만 늘어난다.


그렇다면 언제 메스를 들어야 할까? 언제 반창고로 만족해야 할까? 답은 타이밍이다. 너무 늦으면 환자가 죽고, 너무 이르면 멀쩡한 몸에 상처만 낸다.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렵지만 꼭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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