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개혁에 대한 고민 이후, 문득 든 생각은 우리는 5년마다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선거를 통해 비폭력적인 혁명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국가 시스템은 3가지 커다란 기관이 존재한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그리고 우리들의 손으로 입법부와 행정부를 선출한다. '뭔가 바뀔 것 같다'는 기대감을 한껏 가지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어제까지 절대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이 오늘 아침에는 그냥 시민이 되어버린다. 폭력도, 유혈사태도 없이 말이다. 단지 사람들이 종이에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바뀐다. 긴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의 교체는 대부분 피비린내 나는 일이었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궁궐은 피로 물들었다.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려면 기존 권력자를 제거해야 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다르다. 5년마다, 또는 4년마다 정해진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권력이 흔들린다. 마치 나무가 계절마다 잎을 갈아입듯이 말이다.
어쩌면 민주주의야말로 인류가 발명한 가장 정교한 혁명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혁명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다. 기존 권력자를 몰아내고, 새로운 권력자를 세우며, 때로는 정책과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이다.
지난 대선을 떠올려보자. 수개월 동안 후보들은 기존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제가 망가졌다", "계엄이 잘못됐다." "인기투표가 되면 안된다" "복지가 부족하다"며 혁명가처럼 기존 체제를 비판했다. 유권자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며 누구에게 표를 줄지 고민했다. 그리고 선거일 밤, 결과가 발표됐다. 기존의 권력을 유지할지,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지가 결정된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면, 정부의 조직이 변화한다. 장관들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며, 때로는 국정 철학 자체가 180도 달라진다. 보수에서 진보로, 또는 진보에서 보수로. 친미에서 친중으로, 또는 그 반대로. 마치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나라의 방향이 바뀐다. 이 모든 변화가 헌법이라는 틀 안에서 일어난다. 혁명이지만 개혁의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뒤엎지는 않으면서도, 권력의 핵심을 바꿔버린다. 이보다 더 세련된 혁명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런 혁명과 개혁 사이의 줄타기는 적폐의 누적을 막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부패한 권력자라도 5년이면 끝이다. 아무리 잘못된 정책이라도 다음 정권에서 바뀔 수 있다. 마치 컴퓨터를 주기적으로 재부팅하는 것처럼, 시스템이 너무 꼬이기 전에 리셋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당연하리만큼 그 다음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다. 무언가 잘못한게 있는지, 어떤 부패가 있었는지, 마치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기존의 권력자들이 물러나거나 죽는 것처럼 기존 권력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새로운 권력이 도래했음을,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한다.
물론 민주주의도 문제가 있다. 포퓰리즘에 휘둘리기도 하고,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기도 한다. 5년마다 바뀌는 정책 때문에 일관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조차 다음 선거에서 교정할 수 있다는 게 민주주의의 힘이다.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최악을 제외한 모든 정치체제보다 나쁜 제도"라고 말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른 모든 대안보다는 낫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가장 조용한 혁명의 장치이다. 혁명의 파괴력은 유지하면서도, 혁명의 위험성은 최소화한다. 변화의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급진적 변화의 충격은 완충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기존 권력에 도전하겠다며 정책을 고민하고, 유권자들을 설득하려 애쓸 것이다. 그리고 5년 후, 또 다른 작은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