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대로 되지 않는 것

by 거의모든것의리뷰

공부를 한다. 학교가 끝나고 6시부터 7시 50분까지는 수학, 8시부터 9시 50분까지 영어, 10시부터 11시 50분까지 과학을 하는 완벽한 계획이 있다. 누군가는 한시간마다 혹은 누군가는 30분마다 계획을 짜기도 한다. 이 계획의 놀라운 점이 있다면 하루와 이틀, 길게는 일주일까지는 나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일주일만 넘어가도 예상치 못한 일들에 마주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놀러가자는 유혹에 이기지 못한다거나, 갑자기 치킨을 먹고 싶어서 치킨을 먹게 된다거나 하는 계획표에 없던 일들은 계획표를 망친다.


한가지 떠오르는 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


이럴거면 계획을 왜 세우는지 때로는 현타가 오기도 하고 계획에 대한 무의미함이 수면위로 떠올라 잠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계획이 무의미한가? 나는 지난주 카페에서 한 학생이 알록달록한 형광펜으로 빼곡히 채워진 플래너를 펼쳐놓고 있던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영어 단어를 외워야 했지만, 2시 30분경 친구에게 온 카톡에 답장을 하기 시작했고, 3시에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으며, 3시 30분에 돌아와서는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계획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학생이 4시 15분경 문득 자신의 플래너를 다시 들여다보더니, 영어 단어장을 꺼내 공부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비록 계획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돌아왔다. 마치 길을 잃었던 여행자가 나침반을 보고 다시 방향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종종 계획을 완벽한 시간표로 착각한다. 마치 기차 시간표처럼 정확히 그 시각에 그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계획의 진짜 역할은 시간표가 아니라 나침반에 가깝다. 나침반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알려주지, 언제 도착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등산을 할 때 우리는 정상이라는 목표지점을 정한다. 하지만 올라가는 도중 예쁜 꽃을 발견하면 잠시 멈춰 서서 구경하기도 하고, 지쳐서 쉬어가기도 하며, 때로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돌아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상에 오르려는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길을 잃었을 때마다 나침반을 보고, 지도를 확인하며,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계획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계획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마다 계획이라는 나침반을 보고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친구와 놀고 난 후에도, 치킨을 먹고 난 후에도, 우리는 결국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로 돌아올 수 있다. 계획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불완벽한 계획이라도 계속 품고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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