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욕망
아주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들어있는 앨범이 하나 있다. 옛날에도 핸드폰에만 없었을 뿐이지 카메라는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독립운동가들이나, 할머니의 집에서 봤던 아빠의 어린 시절의 사진이 연달아 생각나면 핸드폰보다는 카메라가 훨씬 더 오랫동안 발전해 온 기술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야 많지만 인화된 사진은 많지 않다. 실물의 사진은 여전히 옛날 졸업식이나 휴가지에서 찍었던 것같이, 지금도 특별한 곳에서 찍은 사진들만 인화되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지금의 실물 사진은 인화되기보다 인스타그램에 게시물로 올라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말이다. 한편에서는 인생 네 컷이 실물사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걸 보면 사진이 어떤 순간을 추억하기 위한 장면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그리고 어떤 순간을 더 아름답고, 멋있게 남기길 원하면서 보정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보정 자체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초상화를 통해 어떤 인물의 모습을 남길 때, 특히 왕이나 장군 등을 묘사한 그림들은 실제보다 조금은 더 위엄이 있고 치부를 가린 채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는 그의 노쇠한 모습을 감춘 채,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 유명한 태양왕 14세는 대머리였고, 천연두로 인한 곰보자국이 있었지만 그들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태양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후대에 남겨질 모습에 본인의 치부를 남기고 싶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이나 사진 자체의 보정뿐만 아니다. 웨딩 사진을 찍거나 바디프로필 등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고 피부과를 간다. 거기에 스드메의 하나인 메이크업과 사진을 찍은 이후의 보정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보정이 모두 들어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욕망은 지금까지 이어져, 사진을 찍는 카메라가 발전하는 만큼 보정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했다. 스마트폰의 기본 카메라에도 약간의 보정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료로 보정할 수 있는 어플에 이어 AI를 통한 보정까지.
성숙해질수록 내면을 본다 했으나, 찬란한 아름다움이 성숙함을 가리는 건지, 이쁘면 장땡인 건지 알 수는 없다. 기억이 미화될 때, 사진이 그 증거로 남기를 바라는 건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