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점 받았어?"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이 질문에 익숙하다. 시험 점수, 키와 몸무게 모든 것이 숫자로 평가받았다. 그때는 단순했다. 100점이 90점보다 좋고, 180이 넘는 남자일수록 좋은 것이었다. 이제는 그런 단순한 숫자들에서 더 정교해지고, 더 복잡해진 숫자만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을 켜면 숫자들이 쏟아진다. 좋아요 개수, 조회수, 팔로워 수. 건강 앱은 하루 걸음 수와 심박수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은행 앱은 통장 잔고와 신용점수를 정확히 몇 점까지 보여준다. 배달 앱과 지도 앱들은 별점과 리뷰 개수로 음식점을 줄 세운다.우리는 가끔 숫자들을 맹신한다. 마치 숫자가 진실을 말해줄 거라고 믿는 것처럼. 별점 4.8점 식당은 4.5점 식당보다 분명히 맛있을 거라고, 구독자가 100만명인 채널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연봉 5천만 원인 사람은 4천만 원인 사람보다 더 성공한 거라고 당연하게 여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숫자에 의존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혁명과 함께 시작된 것 같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측정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객관적"이라는 단어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주관적 판단은 편향적이고 부정확하다고 여겨졌다. 반면 숫자는 정확하고, 공정하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게 되면 지도를 켜 네이버지도는 광고가 많다는 이유로 카카오앱의 별점을 기준으로 삼았다. 꽤 높은 별점과 많은 리뷰들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실망스러웠다. 서비스는 좋았으나 아구찜은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숫자는 정확해 보이지만, 그 숫자가 만들어진 과정과 맥락을 숨긴다. 마치 사진이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지만 그 전후 상황은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점점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결혼 정보회사나 흔한 얘기로 사람들의 별점과 급을 나누기도 한다. 10의 여자, 7의 여자등을 만든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한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우리는 별점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친구로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시도한다. 연인 관계도 궁합 점수로 계산하고, 친구 관계도 연락 빈도와 만남 횟수로 측정하려 든다. 영화나 책도 평점과 순위로만 평가한다. 마치 숫자로 표현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직장이다. 모든 것이 KPI(핵심성과지표)로 관리된다. 직원의 성과도, 만족도도, 심지어 창의성까지 숫자로 측정하려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로 여기는 다른 항목들 - 팀워크, 소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리더십 - 은 숫자로 담기 어렵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좋아요 개수가 인기의 척도가 되고, 팔로워 수가 영향력의 지표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숫자를 얻기 위해 진짜 자신을 숨기고 숫자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든다. 하지만 좋아요 1000개를 받은 게시물과 10개를 받은 게시물 중 어느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없다. 10명의 진정한 공감이 1000명의 무심한 클릭보다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숫자 숭배는 우리의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우리는 점점 더 자신의 직감과 경험을 믿지 않게 되었다. 대신 알고리즘이 계산해준 숫자에 의존한다. 음악 취향도 스트리밍 서비스의 추천 점수를 따르고, 책도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고 고른다. 한번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한번 1등을 하면 또다른 유입이 만들어져 승자독식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는 좋아요나 1등을 위한 조작이 일어난다. 다단계를 했던 사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순위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음악이 1등을 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노래였으면 조작을 안해도 됐을 텐데 왜 그랬을까?" 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숫자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숫자가 주는 정보와 편의성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숫자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균형감각이다. 숫자는 참고할 뿐, 최종 판단은 우리가 내려야 한다. 별점이 낮아도 내 취향에 맞는 식당이 있을 수 있고, 조회수가 적어도 나에게 감동을 주는 영상이 있을 수 있다.
숫자는 현실의 일부를 보여줄 뿐, 현실의 전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