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형태든.
시간이 빌 때, 영화를 보고, 넷플릭스 시리즈를 본다. 새로운 이야기들에 대한 욕망과 그다음 이야기를 보고 결말을 보려는 욕구는 3대 욕구라고 하는 수면욕과도 싸워 이길 만큼 강렬하게 남아있다. 글, 그림, 영화, 만화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가 다른 형태의 것을 좋아한다고 한들, 결국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것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지만, 왜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언어를 통해 특정한 정보 외에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동물을 본 적이 없다. 개미들이나 벌들이 어떤 곳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춤과 향기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봤지만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동물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까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이야기가 재미있을까를 생각해 봤을 때,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을 제공한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구조로 정리해서 보여준다. 선악의 구분, 인과관계의 명확함, 갈등의 해결과정. 실제 세상은 이렇게 명쾌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구조를 통해 우리는 현실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이 즉각적인 도움이 된다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움이 된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나의 삶에 다가왔을 때 그것을 대하는 슬기로운 방법이라든지, 어떤 해결책을 적절하게 찾을 수 있다.
재미로 보는 소설이나 영화뿐만 아니라 뉴스를 볼 때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야기의 구조를 적용한다.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악역인지,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떤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지. 현실은 훨씬 복잡하지만, 이야기의 틀로 이해하면 조금 더 납득하기 쉬워지고 뉴스 역시 어떤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 수 있도록 조금 더 자극적이고 조금 더 의도를 담아 전달한다.
한편 이야기는 소통의 수단이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오늘 있었던 일, 어제 본 영화, 친구에게 들은 에피소드.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감정과 의미를 함께 전달하려면 이야기의 형태를 빌릴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과 "오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라며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소통이다. 후자가 훨씬 더 생생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정보전달의 목적과 마음을 풀어놓는 험담 두 가지의 효과를 발휘한다. (험담이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한다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재미있다. 이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왜 재미있는지 설명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굳이 생각해 보면 이야기 속에는 예측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에 뭐가 일어날까"를 예상하면서 본다. 그 예상이 맞으면 맞는 대로 틀리면 틀린 대로 재미있다. 웹툰들의 댓글이 다음화를 예측하는 내용들 투성이인 것을 보면 이 예측이 결코 한 사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예측과 반전의 반복이 묘한 쾌감을 준다.
또 이야기는 안전한 모험을 제공한다. 실제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위험하고 복잡한 상황들을 안전한 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전쟁터에 나갈 필요 없이 전쟁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고, 연인과 헤어질 필요 없이 이별의 아픔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인 셈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우리는 실제 경험보다 가짜 경험에 더 몰입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별로 감동받지 않는 일도 드라마에서 보면 눈물을 흘린다. 실제 친구의 고민은 시큰둥하게 듣다가도 소설 속 주인공의 고민에는 밤새 마음 졸인다.
결국 우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인 것 같다. 직접적으로 "이렇게 해라"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선택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재미있다.
이야기는 인생의 예고편이자 연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