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기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카톡이 왔다. 알림 창에 메시지의 첫 줄이 살짝 보인다. "오늘 회의에서..." 전체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간다.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도 든다. 메시지를 열어보기 전에 이미 마음이 무거워진다. 영화관 로비에는 다음 주 개봉작 예고편이 반복해서 재생된다. 2분 30초 동안 영화의 핵심 장면들이 압축되어 보인다. 액션, 로맨스, 반전, 심지어 결말까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예고편을 보고 나면 이미 영화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우리는 대부분의 것을 미리 보기 시작했다.


미리 보기의 시작은 아마 효율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려는 인간의 합리적 욕구. 별로인 영화에 두 시간을 허비하느니 미리 예고편으로 걸러내는 게 낫다. 중요하지 않은 메시지에 신경 쓰느니 미리 내용을 파악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효율적이다.


그렇게 미리 보기에 의존 아닌 의존하게 되었다.


음식점을 고를 때도 메뉴판 사진을 먼저 본다. 여행지를 정할 때도 인스타그램의 사진들을 미리 확인한다. 심지어 사람을 만날 때도 SNS 프로필을 미리 본다. 실제 경험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미리 경험'해버린다. 단순히 사진뿐이 아니다. 음식점에서 후기를 보며 어떤 맛일지 예측한다. 그 예측을 통해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미리 보기가 좋으면 기대가 높아지고, 실제 경험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한다. 반대로 미리 보기가 별로면 처음부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실제로는 좋을 수 있는 경험을 놓치게 되기도 한다.


몇 달 전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재미없다고 들은 영화를 보러 갔다. 그 시간이 비어 영화를 보게 된 거라 기대를 하지 않고 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계속 놀라게 되고, 몰입도도 훨씬 높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본 영화들이 더 재미있기도 했다는 것을.


하지만 모든 미리 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어느 정도의 필터링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미리 보기와 실제 경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도적 무지'의 용기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미리 알지 않고도 경험할 용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받아들일 자신감, 놀라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 말이다. 카톡 미리 보기를 끄고, 영화 예고편을 보지 않고, 레스토랑 사진을 확인하지 않고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때로 재미없는 영화를 봐도, 때로 맛없는 음식점에 가도 그를 견딜 수 있는 그런 작은 용기들이 모여서 우리 삶을 조금 더 생생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예고편이 없는 경험들이다. 미리 알 수 없고, 계획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는 순간들.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때로는 미리 보기의 유혹을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미리 보기는 시간을 절약해 주지만, 경험은 가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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