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혼자 탄다. 5층에서 한 사람이 더 탄다. 갑자기 공간이 어색해진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층수 표시만 바뀌는 소리,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린다. 겨우 1분도 안 되는 시간인데 길게 느껴진다. 스마트폰을 꺼내려다가 말고, 층수 버튼을 쳐다보다가, 신발 끝을 내려다본다.
왜 침묵이 이렇게 불편할까?
커피숍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혼자 앉아있는 것이 어색해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특별히 볼 것도 없는데 계속 화면을 만진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뉴스를 확인하고, 게임을 한다. 친구가 와서야 폰을 내려놓는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TV를 켠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소리가 있어야 안심이 된다. 요리할 때도, 청소할 때도, 심지어 잠들 때까지 뭔가 소리가 나고 있어야 한다.
침묵을 두려워했다.
침묵이 주는 불안감은 우리 내면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그 마음이 항상 편안한 상태는 아니다. 걱정, 불안, 후회, 부끄러움 같은 감정들이 떠오른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 미뤄둔 고민들이 고개를 든다. 소음은 이런 불편한 생각들을 가려준다. TV 소리, 음악,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내면의 목소리를 덮어버린다. 마치 진통제처럼 일시적으로 불편함을 잊게 해 준다.
하지만 침묵을 속에서 새로운 것들이 피어난다. 꼭 침묵이랑 연관되어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요함과 아무런 생각 없음 속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둔 고민들,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 침묵 속에서야 이런 생각들이 떠오를 수 있었다.
침묵은 우리에게 자신과 대화할 기회를 준다. 외부의 소음에 가려져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그 목소리가 항상 달콤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견뎌야만 진짜 나 자신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침묵을 허용하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 소리가 나고, 무언가 일어나고, 무언가 자극이 있다. 지하철에서도 음악이 나오고, 매장에서도 BGM이 흘러나오며, 길거리에서도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침묵을 만들려고 해도 쉽지 않다. 스마트폰이 있는 한 완전한 침묵은 불가능하다. 알림음, 진동,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침묵을 방해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내가 없을 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도 있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 깊이 있는 사고가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이들은 침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침묵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영감과 통찰이 있다는 것을 안다. 작가들이 조용한 곳을 찾아 글을 쓰고, 철학자들이 산책을 하며 사색하고, 예술가들이 적막한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백색소음조차 없는 곳에서 그들이 찾고 있는 것들.
때때로 명상이 생각날 때 매일 그런 시간을 가져볼까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명상에 들다가 잠에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될지도 모른다. 자도 좋다. 하루 10분씩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기로 마음을 먹고 5분 만에 자더라도 5분이라는 시간 동안은 아무런 소리 없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차 익숙해지겠지.
내 안에서 나의 목소리들이 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 말이다.